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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영원한 화두
[學而思] 영원한 화두
  • 박용규 상지대·언론학
  • 승인 2009.03.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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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느 분야를 연구하느냐고 물어서 ‘언론사’라고 대답하면 간혹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왜 저럴까 생각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言論史’가 아니라 ‘言論社’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언론사를 연구한다니 도대체 무엇을 연구한다는 말인가’ 하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일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서는 발음 때문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교과편성에서 언론사 과목이 사라지면서 아예 ‘언론사’란 단어 자체를 듣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국 언론사, 세계 언론사 등 다양한 이름의 언론사 과목이 있었지만, 이제 대부분의 대학에서 언론사 과목이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언론사 연구자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학회 언론사 분과의 평균 연령이 60대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다.
디지털, 매체융합, 다매체다채널 등의 용어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과거 언론의 역사를 가르치고 연구한다는 것이 한가하게 비쳐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이런 현실이 비단 언론학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역사적 접근을 하는 과목이나 연구들이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언론학보다는 다소 덜하지만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역사 관련 과목이 사라지고 전공자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실을 낳은 원인들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우리 사회과학의 몰역사성이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 손쉽게 서구이론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연구들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많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회적 문제들을 낳은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분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학 분야에서 몰역사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을 주장하면서, 과거 군사정권의 강압적 조치를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라는 논리까지 펴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찾아낸 논리치고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오히려 한국 언론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여전히 언론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법 개정 논쟁을 보면서, 言論史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일방적으로 특정 言論社의 이해를 대변하도록 만드는 한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언론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뉴미디어·멀티미디어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 미디어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내 자신도 언론사를 연구하며 역사의 현재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언론사를 가르치며 역사의 효용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왔다. 최근의 언론 현실은 언론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내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언론사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학회 언론사 분과의 평균 연령을 낮추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언론사 연구와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좀 더 널리 알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은 가능할 듯싶다.

그러나 言論社 입사만을 목표로 들어온 학생들의 수요가 오로지 실용적인 과목에 몰리는 현실에서 언론사 교육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우선 과목 개설도 신중해지지만, 과목 운영에는 더 큰 고심이 뒤따른다.
경제 위기 속에 언론사에서 사람 뽑는 일이 거의 없고, 기껏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것이 저임금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목 수는 한 과목 정도로 최소화되고, 가능한 한 현재적 의미를 부각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言論史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言論社 입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내게 역사의식과 실무능력을 모두 갖춘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 꿈이라면 너무 거창할까. 언론사와 저널리즘 과목을 주로 가르치며 이런 꿈을 꿔보지만, 항상 너무 높은 현실의 벽을 절감할 뿐이다. 언론사가 전공이라고 말할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더욱 간절히 우리 학생들이 언론사에 더 많이 입사했으면 좋겠다. ‘言論史 연구’와 ‘言論社 입사’는 교수로서 나의 영원한 화두이다.

박용규 상지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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