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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맘 편하게 못 나눠 … 교수 전용주차장 주말에도 滿員
대화 맘 편하게 못 나눠 … 교수 전용주차장 주말에도 滿員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9.03.09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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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중심 평가가 몰고 온 교수사회 변화상

이웃 연구실을 쓰는 교수얼굴을 못 본지 오래다. 학과회의 때 참여하는 교수도 적다. 어떤 이는 몇 달 만에 승진심사에 통과했다며 대학의 자랑이 됐다. 나름의 고민을 안고 연구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마주하면서도 “논문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조금 과장된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교수들이 업적평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예상 외로 크다. 연구성과, 경쟁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의욕상실’을 호소하는 교수가 늘고 있다. 나날이 강화되고 있는 연구논문 중심의 업적평가가 가져온 요즘 교수들의 달라진 생활상을 들여다봤다.

□평가위한 논문쓰기 집중=몇 년 사이 승진·재임용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업적평가 시 제출하는 논문 편수를 늘린 대학이 많다. ㅅ대 한 교수는 이를 두고 “연구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고 푸념한다. 자연히 장기 연구프로젝트는 ‘장기적으로’ 미루고 있다. “재계약에 필요한 논문을 쓰는 일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같은 논문이라도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등재후보지에 게재한 논문은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아무리 내용이 좋은 논문도 등재지나 등재후보지에 실리지 않으면 평가점수가 낮다.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실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논문주제를 정한다.” 한양대 ㄱ교수의 말이다.

논문에 비해 저역서 실적이 저평가되고 있는 현실 사정도 교수들이 저역서 출판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논문은 100미터 경주, 저역서 출판은 마라톤이다. 논문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지만, 저역서를 업적평가에서 낮게 평가하는 일은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좋은 저작이 나오지 못하는 풍토를 꼬집었다.“일방적인 논문중심 평가관행 때문에 저서집필이 중요한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진 등재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저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고 지적했다.

□교수 단합대회는 옛날이야기=ㅂ대 교수는 늦은 밤에 캠퍼스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교수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울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들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긴장됐다”고 전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불 켜진 연구실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다. 동료 교수들끼리 어울리며 술 한 잔 마시는 일도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유덕기 동국대 교수(생명자원경제학과)는 지나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다소 아쉽다고 말한다. “편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하지 않나. 교수들이 자주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면서 강의방향을 정하거나 예상치 못 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데,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다보니 대화가 부드럽지 못 한 면이 있다.”

□교수협의회 참여 저조=교수협의회 활동도 예전 같지 않다. 정용하 부산대 교수협의회장(국교련 상임의장, 정치외교학과)은 “교수들이 개인연구에 몰두하다보니 교협활동 참여가 저조해 아쉬움이 없진 않다”면서도 “교수들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한 정교수들에게 참여를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대학 교수협의회장은 “교수들이 인사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학운영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을 부담스럽게 느낀다. 교협도 자칫 교수이기주의로 비춰질까봐 언행에 특히 조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직급 따라 업적평가 스트레스도 차이=ㅁ교수는 지난해 상반기 신임교수로 임용됐다. 가뭄에 콩 나듯 인문학 분야 교수임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렵게 대학에 정착할 수 있었던  그는 내심 선배교수들이 많이 도와주길 바랐다.

그러나 ㅁ교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학과 행정업무였다. 그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은데 언제까지 학과 행정업무 때문에 시간을 뺏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학회에서도 일을 시키려는 것 같아서 나가기 두렵다”고 토로했다.

업적평가에 대한 체감온도도 직급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정년보장심사를 받았거나 연구년을 몇 번 거친 정교수에 비해 전임강사와 조교수, 부교수들은 업적평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교수를 임용할 때 영어강의를 의무조건으로 내세우는 곳이 늘면서 신임교수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획일적으로 업적평가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문제지만, 일부 정교수들은 기본적인 연구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교수가 교육만 잘 하면 되지, 논문 때문에 다른 일을 못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땐 어이가 없다.” ㅇ대 부교수의 솔직한 심정이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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