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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치된 公民교육
[딸깍발이] 방치된 公民교육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 승인 2009.03.02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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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정치적 구성원리로 민주주의를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온 서구 사회의 발전과정과 비교해 볼 때, 이를 배우고 답습하는 우리 사회에서 간과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공백을 발견하게 된다. 정치적, 사회적 지도원리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이념을 받아들인 것은 우리 역사에 어마어마한 진보를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간과되는 것은 그러한 평등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일정량의 도덕적 책무를 시민 각자 스스로 부담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또 사회지도층이나 경제적 부유층은 그 책무의 양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 특히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나라의 공적, 사적 교육내용이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양의 경우, 그리스나 로마시대부터 발전돼온 ‘공화주의’적 정치제도는 인민 전체의 참여를 애초부터 전제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는 사회의 최상층, 즉 귀족이나 부유층 시민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동시에 또한 공동체의 안녕에 대해 그만큼의 무한책임이 부과되는 사회윤리였다. 우선 공동체의 방어를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투여해 담당했다. 그 밖에 공동체의 물리적인 공공시설과 정신적인 풍속의 유지 및 사회 소외층에 대한 구휼 등도 모두 함께 이들이 담당하는 의무사항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정신이다. 이 공화주의는 근대에 들어와 대중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접목된다.
이제 정치적 권력이 모든 인민에게 분배되면서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무도 모든 ‘시민’에게 요구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은 새로이 발달한 근대 서양의 교육제도 안에 용해돼 표현되고 있다.

현대의 서구에서는 초중등교육에서부터 ‘公民(civics)’ 과목이 필수 교육과정으로 들어 있고, 어려서부터 이웃에 대한 봉사와 리더십을 함양하는 교육이 매우 강조되고 있기에, 대학 입학과정에서 이러한 요소는 지적 수월성과 못지않게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지도자가 부상되면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그들이 일류 사립 고등학교나 일류 대학을 졸업했다고 대서특필하지만, 정작 그들이 받았던 교육의 내용과 그들이 실천해 왔던 리더십이나 봉사활동에 대한 조명은 소홀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건국되면서부터 국가의 지도 원리를 헌법 제1조에 표명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긴 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공화주의적 공민의 책무에 관해 얼마만큼의 교육을 시행하고 또한 이의 실천이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제도화돼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소홀히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룬 기적적인 경제발전의 이면에, 우리가 얼마나 천민자본주의적 졸부(nouveau riche)근성에 젖어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나 하나만 잘살고, 무슨 돈을 써서라도 내 자식만 일류학교에 보내고, 무슨 불법을 저질러도 내 자식만은 병역의무에서 면제시키려 한다. 반면에 이웃의 피폐와 아픔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아니, 아랑곳하지 말라는 교육을 가정에서부터 시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더욱이 공교육 기관과 교육과정에서도 이러한 민주적 시민의 책무가 충분히 교육되고 있지 않은 현실인 것이다.

헌법에 선포한 ‘민주공화국’이라는 지도원리를 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의 실천을 위한 교육과정과 내용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생활의 일상에서 우리는 이웃과 같이 안녕과 복지를 추구해야한다는 공화주의적  시민의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와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웃의 슬픔과 불행을 외면하는 사회는 절대로 공고히 유지될 수 없으며, 특히 이러한 공민적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가가 돼서는 안 된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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