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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인터넷 욕설의 진화유전학
[문화비평] 인터넷 욕설의 진화유전학
  •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9.02.23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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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적지 않은 스팸메일이 스팸 필터를 뚫고 들어왔다. 대부분의 스팸메일 처리기는 특정 단어, 또는 발송지를 기준으로 분리수거를 한다. 때문에 ‘Viagra’나 ‘조건만남’등과 같은 단어를 제목으로 늠름하게 달고서 배달될 메일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약간의 조작을 이용하면 Viagra는 가볍게 일차 관문을 돌파한다. 필자가 본 몇 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Viaqra, Vaiggra, Viggra, Viiagrra, V?agra, V1agr2, V-i-a-g-r-a, V!agr@. 이 중에서도 가장 감탄스런 조합은 /!@gr@ 이다. 사실 소문자 i를 대신할 수 있는 영문자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대략 1억(무려!)가지 이상의 비아그라 변형단어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비아그라의 모든 변종 단어를 금지단어로 등록해 필터링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스팸메일을 볼 때 마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님이 생각이 난다. 죽기를 각오하고 스팸을 보내는 사람을 일반 민간인이 이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장안을 달구는 사이버 모욕죄는 결국 인터넷으로 욕설이나 험담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이다. 남이 보든 안보든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죄의 한 특징은 서로 치열하게 모욕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도 그들을 고발할 수 있는 독특한 장치 때문에 논란이 되는 듯하다.

살다보면 모욕을 즐기는 분도 볼 수 있다.  필자의 얕은 지식에 의하면 우리는 성문법 그리고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욕설이나 모욕에 대해 뭔가 정량적 지표가 필요할 듯하다.
보통 일반의 채팅 사이트에서 욕을 쳐 넣으면 그런 단어들은 ‘꽃’이나 ‘백두산’ 등의 단어로 자동 변환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상상력을 무시한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포털사이트에서 걸리지 않는 변종 단어는 수없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높으신 나리님들께서도 간혹 즐겨 사용하신다는 ‘시발’이라는 욕설에 대해 떠도는 것을 모아 보았다. 이들 모두는 서슬 퍼런 인터넷 채팅 사이트의 검열을 통과한 좋은 품종의 욕임이 분명하다.
그들을 펼쳐보면, 띠발, 뚜발, 히발, 씹빨, 씹벌, 뛰발, 휘발, 십알, 쉽알, 18, 십8, 10팔, 히발, 쉬발, 시밤,  씨불, 씨뱅, 씨팔, 씨펄, 씨풀, 씨뱅, ㅆ1발, 쒸발, 쒸벌, 쒸뱅, 쒸불, 시불, 시뱅, 시풀, 10발, 씌발, 씌벌, 씌불, 씌뱅, 씌팔, 씌펄, 씌풀, 씌팽 등이다(글꼴이  지원되지 않는 단어가 12개 더 있다).

필자는 작금 전공을 살려서 이런 욕들의 진화적 계통도를 작성중이다. 욕에도 애미 애비가 없지는 않다. 씨발은 시발의 장남일 것 같다. 그리고 씨-과 쒸발은 진화적으로 가깝지만 아무래도 ‘씌팽’과는 그 진화적 거리가 한참 멀다. 필자의 최근 연구목표는 어떤 변종 욕이 나오면 이들이 거룩한 ‘시발’족의 어느 파, 몇 대 손인지를 번개같이 찾아내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다. 아마 잘 마무리가 된다면 인터넷에서 ‘시발’종족의 모든 욕지거리들은 멸문의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이도 썩 잘 될 것 같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국제적인 짝짓기를 통한 C8과 같은 변종의 탄생은 ‘시발’족의 진화유전학을 더 어렵게 한다. 
18이 금지어로 지정된 한 사이트에서는 17.5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따라서  “17.95같은 놈”은 상당히 독한 욕이 아닐 수 없다. 이 36/2놈아! 혹은 이 놈아, √324이딴 욕은 제법 수학을 하는 사람끼리 통하는 수리 (나)형 욕이 될 것이다.

곧 등장할 사이버 모욕죄에서의 정량적 평가기준을 생각해보니 17.7 정도에서 끊어주는 것이 좋을듯하다. 17.7 이하는 훈방조치, 17.71이상 17.91까지는 벌금형, 그 이상은 모두 징역형이 좋겠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 욕설도 진화하고진화론도 진화하지만 지탄받는 공직자들의 재산불리기 수법의 진화는 참으로 더디다. 법률에 대한 오해, 위장전입, 대리경작, 전매, 불법 증여를 통한 탈세 등, 이 구태의연한 방법들은 좀 더 감쪽같고, 좀 더 섹시하고, 보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진화가 돼줘야 할 것이다.
여하간 사이버 모욕죄, 그 새로운 욕설과 새로운 감시자들의 창조적 전쟁터가 될 그 미래가 무척 궁금해진다.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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