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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성폭력 사태를 보고] 누가 착각과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를 보고] 누가 착각과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 승인 2009.02.23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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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성희롱 행위자가 된다면?”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상담실에서 최근 제작한 성희롱 예방교육 자료집 제목이다. ‘그런 행위를 한 적은 있지만 성희롱을 하지는 않았다’는 진술을 하는 성희롱행위자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있을지 고민하면서 만든 자료다.
다양한 성희롱/성폭력 행위자들을 만나면서 필자가 터득한 것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도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술을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일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떤 날, 어떤 일들이 행해졌고, 그러한 행위를 성폭력이라 명명하는 피해자들이 생겼지만 주최 측은 조직보위를 목적으로 그 사건을 은폐했다.

이제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많은 일들이 발생했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은폐됐을 것이다.
특히 성폭력 근절을 위한 많은 것들이 제도화됐지만 조직보위나 피해자의 수치심을 이유로 많은 성폭력 사건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나무꾼과 선녀』라는 동화에서  옷을 숨긴 나무꾼이 부끄러워하는 선녀를 집에 데리고 간 것도 일명 성폭력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하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초등학생 필독서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은 성폭력적이다. 그리고 여전히 성폭력은 나의 일상과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폭력은 특별한 행위라기보다 나도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경험일 수 있다. 바로 가부장적 문화에서 ‘남성’이 되는 통과의례일 수 있고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호들갑스럽게 진보단체의 성폭력 문제라고 놀랄 이유도 없다. 사회의 변화를 주장하는 진보단체라고 이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만드는 수많은 관행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집안이나 조직의 중심은 남성이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과잉보호할 수 있다. 오빠로서, 아버지로서, 상사로서, 여성에 대한 보호의식은 동료로서 여성을 대하기보다 여성을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영역에서 진보를 주장하는 자들이 사적인 영역에서 성폭력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진보단체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성폭력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유명일간지 기자는 필자에게 진보단체와 그 외 단체의 성폭력사건의 비교통계를 요구하며 진보단체가 더 문제인지 질문했다. 필자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체나 기관에서 더 많은 성폭력이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조직보다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남아있는  건강성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큰 기업에서 성희롱 사건은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보고되지 않는다. 더 철저히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사퇴를 하는 것으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총사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떠한 행위가 성폭력이라고 이름 불리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일상에서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 알파걸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는 관행, 여성을 위한답시고 ‘보호’하는 온정적인 가부장적 문화,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즐겁게 한다고 착각하는 자기중심문화가 성폭력의 주범이다. 따라서 성폭력 근절은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젠더감수성교육, 특히 자신의 몸과 욕망을 변화시키는 열정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필자는 성폭력, 성매매, 성교육, 성정책 등 긴 시간 동안 섹슈얼리티. 쾌락과 위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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