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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블랑쇼의 기억
[學而思] 블랑쇼의 기억
  • 고재정 관동대·불문학
  • 승인 2008.12.31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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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이면 내가 속한 프랑스문화학과의 마지막 졸업생을 내보낸다. 2006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고 해마다 한 학년씩이 졸업해 나가면서 2008학년도에는 4학년만 남아 있었다. 3년에 걸친 구조조정이 올해로 완료된 것이다.

지난 3년은 내게는 프랑스 문화학과에서 미디어문학과로 넘어가는 환승역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미디어문학 전공 학생들에게, 프랑스어 문학이 아닌 일반 문학을 강의한다. 그간 매년 프랑스어 전공이 줄어드는 만큼 일반 문학과 미디어 강의를 늘려왔으니 나름대로 담당 과목도 조정을 거친 셈이다. 현대문학과 미디어비평 분야에서 프랑스 이론가들의 강세가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둥의 뒷이야기는 사실 내게 미디어 관련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향한 기본적 예의 표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목하 진행 중인 구조조정은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이야기를 꺼낸다한들 큰 허물이야 되겠는가. 그렇다고 대학이나 기업, 국가조직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당면과제가 돼버린 구조조정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변해야 산다’는 자극적인 표어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등극한지도 이미 오래 됐다. 프랑스어문학 관련 학과들이 “당신의 전공이 흔들리고 있습니다”라는 신호음을 듣기 시작한 것은 대학들의 학부제 모집이 일반화되는 시점과 대략 일치한다. 이미 한 차례 큰 변화의 물결이 지나갔고 적지 않은 대학들이 전통적인 불어불문학에서 프랑스문화, 문화관광, 지역학, 유럽문화, EU문화정보학 등으로 전환했다. 현재도 프랑스어문학 관련 전공이 강력한 변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변화의 요청에 포위당한 나의 전공에서 오랫동안 변치 않는 것, 변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모리스 블랑쇼라는 프랑스의 작가가 있다. 1907년에서 2003년을 살았으니 짧은 생애는 아니다. 그런데 그는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단 한번 크게 변했다.

‘아우슈비츠’라는 유태인 집단학살 참극이 그에게는 절대적 기점이었다. 물론 ‘아우슈비츠 이후’, 결코 전과 같이 글쓰고 창작할 수 없다고 토로한 예술가와 작가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블랑쇼는 이후 60년을 변함없이 “다시는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유하고 저술했다. ‘아우슈비츠’를 독단적 주체들의 전체주의적 폭력으로 규정한 블랑쇼는 ‘나’라는 주체의 과잉을 덜어내기 위한 사상, 힘을 지향하지 않는 언어, 완결된 전체를 구축하지 않는 실험적 글쓰기의 형태를 반세기 넘게 다듬었다.

그가 이 문제를 결코 떠나지 못했던 것은 1930년대 극우파 정치기자로서 반유태주의적 발언을 했던 자신의 과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부류의 인간들이 다른 집단의 인간들을 차별하는 폭력의 극점에서 빚어진 집단학살의 참극에서 블랑쇼는 이 세상의 모든 차별에 결코 눈감지 말라는 단순한 교훈을 얻어냈고 평생을 실천했다. 그의 실천은 차별의 원천으로서 차별적 자아를 벗어나는 노력까지를 의미했으며, 그 노력을 수행이나 호흡처럼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식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내렸다.

지식인이란 세상에 대한 관심만큼 세상에 대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물러서 있지만 돌아서 있지는 않아야 된다는 이야기다. 곧 거리를 통해 시야를 확보한 후, 자신에 대한 근심이 아니라 타자들에 대한 근심을 지닌 채 세상을 감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적 질서가 훼손되고 차별적 구조가 파고드는 순간과 같이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부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을 지식인의 현실 참여의 핵심으로 보았다. 따라서 지식인의 참여는 실제 권력이나 정치 행위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블랑쇼를 처음 읽은 지 어느덧 30년이 다 돼간다. 그간 20년이 넘게 불문과에서 가르치면서도 블랑쇼를 강의한 적은 없다. 최근에 많은 연구서들이 나오면서난해한 작가라는 평가를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학부에서 강의하기에는 어려운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 대한 강의를 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그렇지만 과거와 역사로부터 얻은 단 하나의 교훈을 60년 넘게 되새겼던 블랑쇼의 인간적인 성실함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과 참여에 대한 그의 생각도 한번쯤 떠올 릴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문제 안에만 갇혀있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사람이며, 자신 만큼이나 가까이 있는 이들, 그리고 먼 미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고재정 관동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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