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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부설학교 공립화 논란]여론수렴 없는 졸속 추진, 교육 자율성 헤친다
[국립 부설학교 공립화 논란]여론수렴 없는 졸속 추진, 교육 자율성 헤친다
  • 송진웅 서울대·물리교육학
  • 승인 2008.12.2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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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부터 전국의 교대·사대와 부설학교들이 갑자기 난리법석이다.
어느날 ‘2009학년도부터 전국의 40여개 국립 교대 및 사대 부설학교를 전격적으로 공립화 한다’는 교과부의 공문을 받아서다.
지난 반세기 이상 이어져 왔던 국립 부설학교의 체제를 당사자인 부설학교와 교·사대도 모른 채 폐지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창의적 인재의 육성은 국가발전을 위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교육의 질은 결코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 교과부는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것일까.교원양성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를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교·사대와 아무런 여론수렴 과정 없이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설학교는 교원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대의 실험·실험장이다.

실험·실습실이 없는 이공계 대학을 상상할 수 없듯 교·사대에서 부설학교는 가장 중요한 실험실이자 연구개발의 터전이다. 남의 실험·실습실을 여기저기서 빌려 이공계 교육을 할 수 있는가. 공립화를 통해 부설학교의 인사, 예산, 지도감독 권한을 시도 교육청으로 모두 넘기는 것은 마치 남의 실험·실험실을 빌려 교원양성과 교육연구를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국립대학 부설학교는 교육실습·연구협력·실험학교로서 참관실습과 근무교육실습, 현장교육연구, 수업모형과 교육자료 개발 등 훌륭한 교사양성을 위해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수십 명 이상의 교생들이 근무실습을 하는 기간 동안 학교는 완전히 탈바꿈한다. 교생 선생님의 등장으로 학생들은 온통 술렁이고, 학교의 모든 교육과 행정에 교생들이 참여하게 된다. 교육실습이 끝난 후에도 흐트러졌던 학교 분위기를 다시 잡아야 하고, 많은 경우 교생이 지도했던 학습내용을 다시 가르친다. 실제로 부설학교는 대학과 연중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협력한다. 이 모든 것들에 의해 부설학교와 지도교사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희생이 주어진다. 부설학교가 공립화 된다면, 이러한 전문성과 열정을 지닌 수준 높은 지도교사를 계속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학교로서도 힘겹고 피곤한 부설학교의 기능을 굳이 감당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교과부는 이같이 막중한 부설학교 문제를 면밀한 타당성 검토와 적절한 의견수렴 과정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려 한다. 敎育百年大計의 정신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준비와 협의도 없이 교원교육의 근간을 훼손하는 비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인 정책추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전국교육대학총장협의회의 반대성명(11월 24일),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의 항의방문(11월 25일), 국립 사범대학 부설 중·고등학교 연합회의 반대의견(11월 26일), 국립사범대학학장협의회의 반대성명(12월 1일) 등이 있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있는 교과부의 처사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는 보통교육에 대한 국민의 교육적 열의를 학교 다양화를 통해 수용하고,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자율을 통한 책임과 성장이란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노력이 성공하길 바란다. 이번 국립 부설학교의 갑작스런 공립화 전환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국립대학 부설학교를 공립학교의 전형적인 틀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학교 획일화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보다 특징적이고 자율적인 교원교육의 장이자 새로운 교육실천의 터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송진웅 서울대·물리교육학

필자는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자연과학분과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사범대학 교무부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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