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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運과 實力
[대학정론] 運과 實力
  • 한준상 논설위원 /연세대·교육학
  • 승인 2008.12.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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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의 신임교수선발 관행이 선진화 되고 있다. 고급 교수요원 인력이 남아돌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만은 아니다. 대학 교수충원행정을 선진화시키지 않고서는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에 생긴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다. 그동안 우리의 신임교수선발과정에서 흔히 보았던 연고주의, 정실주의의 고질적인 관행을 혁파할 할 수 있는 교수충원행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신임교수선발의 다단계과정들은 이전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처리되기에 모든 것이 공정한 것처럼 보여 우선 보기에 좋다.

그렇다고 해서 유능한 신임교수요원이 선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임교수 선발에 동원되는 다단계과정 그 자체마다 운이 따라 붙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교수선발의 단계들은 운이 따라 다니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지원자가 서류심사단계에서 일단 무사히 통과하면, 그에게 학과교수의 면접권이 주어지고, 모의강의평가에서도 웬만큼 실수하지 않는 한 최종 선발대상자로 간추려지게 마련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운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이다.

신임교수요원 심사나 평가과정에도 평가자들의 주관적인 해석과 평점은 언제나 개입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원자의 얼굴을 한두 번 보고 그의 인격이나 성격에 대해 좋고 나쁨으로 평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지원자들 스스로 해당 선임교수들과의 면접에서 자기 스스로를 못된 인물로 찍히게 하는 식으로 인상관리를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에 대한 인물평은 자연히 타인에게서 얻어들은 인물에 대한 됨됨이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학과 교수들은 그런 인물평으로 지원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성을 가름하게 된다.

시범강의에서도 그런 편견은 제거되기 어렵다. 강의기법에서의 차이는 개인마다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 한 차례의 강의 시연을 관찰하고 지원자의 강의능력이나 연구발표능력에 대해 적격, 부적격으로 판정하는 일은 아무래도 덜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혹여 주식으로 쪽박을 차고 있는 면접관 교수들 앞에서 주식대박에 대한 기술론을 강의한 지원자가 있었다면, 그가 시범강의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경우가 더 흔할 법하다.

그래서 신임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과정의 運數가 꽤나 좋아야 한다. 다단계 선발과정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과정 운’부터 일단 좋아야만 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그런 과정 운을 완전히 제도적으로 통제 할 수는 없기에, 대학에서도 그야말로 억세게 ‘운’좋은 사람이 대학교수가 될 확률이 높다. 

결국, 신임교수 선발방법의 공정성을 더욱 더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정 운을 가능한 제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수단과 방법이 필요한 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방편 중의 하나기 바로 서류제출과 서류심사의 제 1단계 과정을 최대한 통제하는 일일 수 있다.

대학신임교수지원자들이 제출한 업적서류를 야박하리만큼 철저하게 심사하면, 평가에 개입되는 과정 운은 조기에 상당할 정도로 차단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짧은 시간의 모의강의평가보다는, 지원자의 교수능력을 최대한 드러내 놓게 만드는 자세한 교수경력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게 하고 그것을 평가하면 지원자의 교수 커리어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방편은 지원자의 연구업적과 능력을 확실하게 드러내 놓도록 관련학문 전문학술지의 인정범위를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하고 축소시키는 방법이다. 어떤 대학들은 자기 대학의 졸업생에게 연구경력을 실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교내 학술지를 간행한 후, 그것을 각종 로비를 통해 어떻게든 학진 등재후보지에 끼이게 만드는 허접한 수법들을 쓴다고 한다. 각 대학들이 지원자들의 학술적 활동 여부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하자 생겨난 잔꾀들이다.

자기대학 졸업자들의 글을 그럴듯한 학술논문으로 포장시켜주기 위한 짓들이다. 그런 류의 논문에 대한 학술적 가치를 평가하지 못한 채 그냥 대학간판이나 학진등재지 여부에 관한 무늬로만 지원자의 연구능력을 평가해주면, 우수한 교수인력 선발은 그야말로 초기 운에 의해 결정되고 만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을 학술진흥재단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등재지 정책과 평가방법의 단순한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더욱 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학술지인증제도를 강화해야만 한다.

한준상 논설위원 /연세대·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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