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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바스마수라’의 운명
[문화비평] ‘바스마수라’의 운명
  • 이옥순 연세대·인도사
  • 승인 2008.12.15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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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인도에 바스마수라라는 청년이 살았다. 재, 먼지를 뜻하는 ‘바스마’와 마귀라는 의미의 ‘아수라’가 합쳐진 이름처럼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숲으로 가서 신에게 초능력을 달라고
빌면서 명상과 고행을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년간 정성을 다하는 그에게 감복한 신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의 이름처럼 제가 만지는 건 모두 재와 먼지로 변하게 해주세요.” 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대답했다.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내려오던 바스마수라는 동물의 왕 호랑이와 마주쳤다. 바스마수라는 멈칫했으나 자기의 초능력을 시험해볼 기회라고 여기고는 틈을 노려 호랑이의 머리에 손을 댔다. 재로 바뀌었다.

저자거리로 나온 바스마수라는 으스대며 가는 곳마다 손을 휘둘러 모든 것을 재와 먼지로 만들었다. 먼지로 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피해 도망갔고, 아끼던 가족도 다 떠났다. 주변에는 단 한 명의 친구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바스마수라는 파괴의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외로워서 파괴에 더 열을 올렸다. 바스마수라는 춤추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는 춤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난 바스마수라는 자신에게 춤을 가르치던 선생의 머리를 만지는 실수를 저질렀고, 춤 선생은 곧 먼지가 됐다.

춤 선생을 죽였다는 걸 깨달은 바스마수라는 흥분해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였고, 도망가는 사람은 악착같이 쫓아가서 재로 만들었다. 
“이제 누가 나에게 춤을 가르쳐준단 말인가? 누구 없어? 나에게 춤을 가르쳐줄 사람이 어디 없냐고?”바스마수라는 거리를 쏘다니며 소리를 질렀으나 사람들은 무서워서 나오지 못했다. 그때 아름다운 한 아가씨가 어떤 집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제가 춤을 가르쳐 드릴 게요.
저는 춤을 잘 춘답니다.” 여자는 상냥하게 웃고는 춤을 추었다. 그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리 오세요. 저하고 춤을 추어요.” 여자가 춤을 추면서 바스마수라에게 손짓했다. 여자의 우아한 춤동작을 보자 바스마수라는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이 들리지 않나요?” 정말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왔다. “자, 조금 더 빨리추세요.” 여자의 말대로 음악을 따라서 바스마수라는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이제 저를 따라서 춤을 추시겠어요? 제가 하는 대로 동작을 따라하세요. 마치 제 그림자처럼.”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바스마수라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여자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여자는 아주빠르게 춤을 추었다. 너무 빨라서 발이 땅에 닿을 새가 없었다. 팔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다가 안으로 구부리더니 앞으로 쭉 내뻗었다. 춤동작이 너무 빨라서 마치 여자는 사라지고 춤만 남은 듯이 보였다. 바스마수라는 질세라 여자를 따라했다.

여자가 팔을 펴면 따라서 팔을 폈고, 여자가 다리를 구부리면 자신도 다리를 구부렸다. 그때 빙글빙글 빠르게 몸을 돌던 여자가 갑자기 두 손을 머리에 얹었다. 바스마수라도그녀를 따라 자기의 머리에 두 손을 올렸다. 무슨 행동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두 손을 자신의 머리에 댄 바스마수라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한 줌의 재가 돼 여자의 발밑에 부서져 내렸다. ‘아수라’가 자기 손에 ‘바스마’가 된 것이다.

바스마수라에게 초능력을 선사한 절대자는 아마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으리라. 상한선이 없는 인간의 욕망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므로. 단단한 나무는 곧 부러지고, 군대가 강하면 곧 망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지난 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이 환경파괴의 부메랑을 맞고, 오늘날 한층 풍성해진 식탁 앞에서 먹을거리를 걱정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국의 팽창’에 나선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인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다섯 배 더 빨리 여행하므로 다섯 배 더 행복하다고 여겼다. 오늘날 빠른 인터넷과 휴대폰을 ‘애용’하면서도 행복이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우리들은 이제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나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며 강해지기보다 절제와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때로 제자리걸음을 해야 한다. 머잖아 닥칠지모를 바스마수라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이옥순 연세대·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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