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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의한 언론지배 막을 수 있나
자본에 의한 언론지배 막을 수 있나
  •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
  • 승인 2008.12.1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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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소유 허용

최근 한나라당이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을 주 골자로 하는 7개 미디어관련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방송 진출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맞물리면서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이 민영화된 KBS2와 MBC의 20% 지분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국내 방송이 공영방송 위주로 설정된 것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조치에 기인한다. 언론통폐합 조치이후 지금까지 방송구조개편이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실질적으로 KBS와 MBC중심의 공영방송체제가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공영방송 중심구도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기보다는 정권과의 유착으로 공영방송의 ‘밥그릇’을 깨뜨릴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국내 공영방송 중심구도가 기득권에 안주했고, 나름대로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영독과점을 뒷받침했던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가 최근에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으면서 방송구조개편이 물살을 타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송구조개편이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수신료를 현재 2500원에서 5000원으로 인상해 상업재원인 광고의존율을 20% 이하로 낮춰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공·민영방송의 차별화가 부족한 현재의 구도에 비해 분명 개선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FTA에 대비해 글로벌 미디어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뉴미디어 소유지분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발상 또한 나름대로 명분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방송 진출 허용은 문제점이 많다. 우선 방송민영화(privatization)정책은 이미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시도됐다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SBS, 지역민방과 케이블TV 모두 공영이 아닌 상업방송으로 출범했다. 과도한 상업방송은 공영방송까지도 상업적 경쟁에 치중하게 만들면서도 정작 명분이었던 글로벌기업 발돋움은 달성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공영방송은 노조와 정권에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나, 최소한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차선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사유화정책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과거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던 시행착오를 면밀하게 짚어보는 작업이 선행되지 못했던 것이 문제다. 둘째,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방송 참여가 야기할 수 있는 ‘여론지배력’에 대한 검증 없이 일방적인 글로벌 시장주의명제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에서도 언론의 다양성은 핵심적인 원칙이다. 가령 민영화된 MBC의 ‘9시뉴스데스크’에서 여야당에 골고루 발언 기회를 제공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방송소유주인 대기업과 관련된 부정적인 뉴스를 지금과 같이 보도할 수 없음은 이미 SBS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미디어통합시장에서 여론지배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장치가 정밀하게 설정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소유는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의 구조개편이 10년 동안 좌파와 노조에 물들었던 방송의 ‘제자리 찾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정부의 장점이었던 시청자주권마저도 무시한 채 오른쪽으로의 노선만을 고집하고 있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방송의 시장주의가 공익성 못지않게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오른쪽이 아니라 중간지대에 있다는 것을 진실로 보여줘야 한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듯 방송정책도 국가 및 시장의 오른쪽 날개 못지 않게 노조와 시민사회의 왼쪽날개도 필요하다.
과거방송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계승하면서 민영화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균형감 있는 태도라 할 것이다.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론과 민주주의』, 『시민사회와 방송개혁』등의 저역서와  「민주적 방송제도의 수립을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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