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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帽子와 강의실
[學而思] 帽子와 강의실
  • 홍순헌 부산대·산업토목학
  • 승인 2008.11.24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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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남녀 불문하고 모자를 많이 쓰고 있다. 아마, 본인의 악세서리 혹은 본인의 개성을 표현하기위한 장신구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대단히 중요한 것 같은데,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앉아 있으니, 도무지 학생과 눈 마주칠 기회가 참 어렵다. 눈을 보며 대화를 해야 서로의 진의를 알 수 있으련만 마음의 창인 눈을 가려 무언의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학생과 교수의 관계, 학부모와 교수의 관계 등 어느 한쪽도 본연의 위치에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특히, 저 학년들은 더욱 더 그렇다. 점점 학생과 교수와의 관계가 사제지간의 도리를 넘어서 갑과 을의 관계로 변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아쉽고 가슴이 답답하다.

많은 교수님들께서도 생각이 깊어지시겠지만, 쉽게 해결 점을 찾지 못한 듯 하다. 경험 많으신 노교수님들부터 해외 유명 대학 유학파 교수님들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은 한숨소리는 똑같은 것 같다.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매학기 첫 수업시간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를 살피게 되는데 꼭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모자 쓴 학생들이다.

이런저런 교과목에 대한 설명과 한 학기 강의에 대한 사항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반드시 모자부터 벗게 하고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순간 기분이 내키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남학생들은 무조건 강제로 모자를 벗게 하고 보니까 첫 시간부터 잔소리에서부터 시작하니 서로 간에 분위기는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학기는 그 분위기가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많은 생각 끝에 올해는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강제성이 아닌 자율적으로 모자를 벗게 해야겠다.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올해 첫 날 첫 수업 강의실에 들어서니 역시 모자는 여기저기 형형색색 자리하고 있었다. 눈에는 거슬렸지만 꾹 참고 먼저 교과목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 학기동안 진행방법 등을 웃는 얼굴로 자세히 설명하고 난 후 상호 예절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교단에 서 계시는 교수님들 중에서 모자를 쓰고 강의하시는 분 봤냐고. 여학생들은 모자가 본인에게 악세서리가 될 수 있겠지만 남학생에게 모자는 무엇일까. 그리고, 꼭 강의 실내에서 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단에서 강의하시는 교과목 교수님이 아주 꼴 보기 싫어서 일까, 잠자기 좋아서일까, 추워서일까, 더워서일까, 남자들은 군대라는 곳에 가면 징그럽게 모자를 많이 쓰서 머리에 비듬이 생기기도 하는데 미리 모자 쓰는 연습을 하는 걸까 등 여러 가지 경우의 가정들을 늘어놓고 질문을 했다.

어쩌면 내가 모르고 있거나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한다면 나는 모자 쓰는 것을 허용하겠다라고 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대답을 못했다. 그 중 한 학생이 학교 일찍 오느라 머리를 감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부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속으로는 '이놈아 너는 매일 지각하는 놈 아니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리고, 이야기 했다. 나는 너희들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싶다. 한명 한명의 이름도 외워서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데, 하물며 너희들의 그 잘나고 씩씩하고 예쁜 얼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희들과는 무슨 관계이며, 학교에서만 반짝 만난 인연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의미없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꼬여진 머리, 떡 진 머리, 노란 머리, 빨간 머리, 빡빡 머리 모두를 사랑 할 수 있어야하고 예뻐 할 수 있어야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힘차게 말했다.

슬그머니 모자들을 벗기 시작했다. 스스로 미안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대머리 학생은 없었다. 그 다음주 강의실에는 모자는 보이지 않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야심차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 동안 수년 동안 고민하고 기분 나빠 했던 것들이 결국 모자 탓만은 아니였구나, 나의 교육 방법 아니 대화방법이 잘못됐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강의실에 기분 좋게 들어선다.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며 희망 가득찬 제자들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

홍순헌 부산대·산업토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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