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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미네르바 신드롬
[대학정론] 미네르바 신드롬
  •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부
  • 승인 2008.11.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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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미네르바라는 비실명 인터넷 사용자가 국민적 존경(?)을 받아 인터넷상의 경제대통령이 됐다. 많은 것을 예측했고 그의 예측은 모두 정확하게 맞았다고 한다. 날짜와 금액까지 맞추었으니 그 많던 금융전문가나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한다. 직접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예측한 것 가운데 현 정부의 의표를 찌른 것은 ‘한국과 미국의 300억불 통화스와프’에 관한 예측이 아닌가 싶다.

이 예측은 두 나라 사이의 내밀한 정치적 흥정의 내용까지 미리 내다보는 것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한국정부는 아직 우리가 2천억 불에 이르는 현금을 갖고 있으니 환율을 염려하지 말라고 큰 소리 쳤으나 그는 ‘그 돈의 소유주는 우리나라 정부일지 몰라도 이미 미국 은행의 구좌에 맡겨놓은 돈인 이상 함부로 찾지 못하는 남의 돈’임을알고 있었다. 미국은 그 돈으로 미국의 금융자산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못 내어주겠다는 돈이다. 우리 국민이 모르고 있었고 우리 정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정부도 미국에 맡긴 자기들 돈이 마음대로 찾기 어려운 돈이라는 것을 지난 3월에야 알았다.

미네르바는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나 경제학자는 주가나 환율을 예측만 잘 해도 안 된다. 예측한 것에 대한 대비책과 해결책까지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경제학자는 바로 오늘 아침에 일어날 일도 실제 일어나야만 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예측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우리 국민들은 바로 이 사람이 경제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열망과 바람이 있었기에 그를 인터넷상의 경제대통령으로까지 추대한 것이다. 인터넷 바깥의 대통령은 지난 12월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를 가장 잘 안다고 자처해서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를 아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그보다는 온라인상의 미네르바였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됐어야 했다는 네티즌들의 열망이 온라인상이긴 하지만 그를 대통령으로까지 추대했다.

허나, 일국에 대통령이 둘씩 있을 수야 없지 않은가. 아무리 온라인상으로만 대통령이라 해도 언제 어떻게 오프라인상의 대통령까지 넘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절필을 강요당했다.
오프라인 대통령은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 사람의 경륜과 학식을 국정에 반영해야 자기가 실은 경제를 잘 몰랐다는 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도 그의 학식과 경륜을 교단에 반영하고 연구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동안의 경제이론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와 학생들에게 가르친 기만적 교수행위에 대해 용서받을 수가 있다.
공황기에는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되고 경제이론가가 된다. 예전에는 자기가 실업자로 돼도 자기 개개인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재수가 없어 실업자가 된 줄 알았지만, 지금은 한두 사람도 아니고 다수가, 못 배운 사람만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까지도, 실업자가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모두 이 사회의 구조와 메커니즘에서부터 뭔가 문제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고 그 원인을 탐색하는데 골몰한다. 제도권의 기존 경제학자들의 권위를 비웃는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다시 나타나고 경제학만이 아닌 새로운 철학자, 사회사상가가 등장할 것이다. 모두가 잠재적 미네르바이고, 잠재적 사회변혁이론가, 사회사상가일 수 있다.

미국의 주류경제학은 논리실증주의에 함몰돼 과거에 경험해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문제에는 속수무책으로 된다. 자기들이 다루어 온 이론과는 생판 다른 조건과 상황에 부딪치면 ‘불학무식자’가 된다. 또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학에서 다루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시장경제에서는 비용과 리스크가 사회화되면 이윤도 사회화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비용과 리스크가 아무리 사회화돼도 이윤만은 사유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경제의 내부화’에 관한 이론을 개발하거나 ‘시장에 의한 모럴 해저드의 규제’를 위한 이론을 개발하면 그런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는 미몽에서 그들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들은 ‘리스크의 사회화’라는 범죄행위를 ‘리스크의 분산’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능에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기능으로 ‘혁신’됐다고 사람들을 기만해왔다.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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