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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폐강과 생존의 경계에서
[딸깍발이] 폐강과 생존의 경계에서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
  • 승인 2008.09.1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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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

학기가 시작됐다. 교수나 학생에게 시간이 되면 학기가 시작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강의를 담당한 교수에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다.
더구나 한숨을 돌리기까지 교수는 학교 홈페이지에 떠오르는 예비수강 신청과 수강신청 정정기간의 수강생 변동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보는 수고까지 해야만 한다. 수강생 숫자가 차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않으면 폐강이 되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 됐다는 것은 매년 3월이나 9월 초, 언제나처럼 개강을 한 후 수강신청 정정기간이 최종적으로 지나가고 학교가 요구하는 일정한 수강생 숫자가 출석부에 올라와 있다는 뜻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수강신청 정정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학생들이 빠져나가거나 다른 과목으로 이동할 위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강의가 살아남느냐, 아니면 폐강이 되느냐하는 급박한 문제가 모든 강의나 모든 교수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개설될 때부터 수강생 숫자가 넘쳐날 것이 확실시 되는 강의가 있고 학생들의학번 순서에 따라 이미 계획적으로 학생 숫자가 배당된 과목도 있다. 그러한 과목을 담당했거나 그러한 강의를 개설한 교수는 강의가 살아남느냐 아니면 폐강이 되느냐하는 문제와는 초반부터 거리가 멀다. 물론 인품이나 학식을 갖춘 저명한 교수님이나 잘 나가는 학과의 잘 나가는 강의는 당연히 논의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에 속하지 못하는 교수들이나 대학에서 위태위태하게 살얼음판을 걷는 강의 과목들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문제라고 했지만 문제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살아남는 강의와 폐강과목의 경계선상에서 생과 사의 결투를 벌여야 하는 교수들이 전임이 아니라 대부분 비전임 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비전임 교수에게 강의가 폐강된다는 것은 곧 대학이나 생활전선에서의 OUT을 의미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비전임 교수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강의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다. 박사학위가 없거나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도 아니다. 전임보다도 공부를 더 많이 했고 연구자질이 풍부한 비전임 교수도 무수히 많다.

공부를 하다 보니 시대의 운과 사회적 환경이 맞지 않아 비전임의 자리에서 대학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교수의 일원일 뿐이다. 비전임의 OUT은 한 개인의 OUT 같지만 한국 학문의 OUT이라는 데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살아남는 과목과 폐강의 경계에서 위태위태하게 살얼음판을 걷는 강의 과목들의 문제도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천덕꾸러기 강좌들이 대부분 대학의 전통이나 역사로 볼 때 아무렇게나 쉽게 길거리에 내다 버릴 수 없는 인문학 강의들이라는 점에 있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제2외국어가 여기에 속하고 인문학의 근간이 되는 문학, 사학, 철학의 전통적인 강의들이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이번 학기 필자가 강의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는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지만 ‘문예학의 이해’는 위태위태하게 살아났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예학의 비중을 굳이 따져 보자면 어느 쪽 강의가 대학에서 더 필요할까를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내년에도 문제가 없겠지만 ‘문예학’은 아무래도 쉽게 넘어갈 사항이 아니다. 그렇다고 ‘독일 사상사’를 ‘철학과 영화’라는 과목으로 개명해 비디오를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폐강과 생존의 위기에 선 강의 과목들에 관한 논의는 학기 초에만 잠시 생각하고 넘어갈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비전임의 생존과 인기, 비인기 과목의 문제만도 아니다.

매번 학기 초에 나타나는 이런 과제는 해당 교수들이나 해당 과목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에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풀어나가야 할 시대적 물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질문을 던지면 5분 동안은 바보가 되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영원한 바보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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