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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21세기 봉이 김선달
[대학정론] 21세기 봉이 김선달
  •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 승인 2008.09.1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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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금융경제학이 최근에 발명한 ‘금융혁신’, ‘新금융’, ‘증권혁명’에 대한 지탄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단초는 주택채권이다. 회사채는 회사가 부도나더라도 그 거래를 주선해준 투자은행이 피해를 보진 않는다. 같은 원리로 개인주택을 담보로 한 주택대출금에 대해서 적용한 것이 바로 주택채권이다. 주택을 담보로 했으니 원금회수는 문제될 게 없다.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라면 쉽게 주택을 처분할 수 있다. 안전도나 투자신뢰도가 최우량이었다. 게다가 금리는 국고금리보다도 2~5배가량 높았다. 미국대학의 발전기금관리자들, 지방정부의 재정관리자들, 기업의 재무관리자들, 외국의 중앙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기관의 외환관리자들이 앞 다퉈 이 채권을 샀다.

이것을 증권혁명이라고까지 격찬하며 투자를 권장한 사람이 FRB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팬이었다.
주택대출을 해준 소규모 대출기관으로부터 투자은행들이 저당채권을 끌어 모아 주택채권이라는 딱지를 만들어 팔았는데, 고객들이 생판 처음 보는 증권이라 외면하자 SIV라는 특별투자회사를 서류상으로만 발족시켜 같은 사무실 책상귀퉁이에서 자기들끼리 사고팔았다. 소위 말하는 바람잡이거래인데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미래에 구매할 주택채권을 담보로 한 상업어음을 발행해 조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채권은 저당채권을 한데 합친 후 그것을 다시 등급별로 재분류해 잘게 나눈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모기지 계약까지도 쪼개져 분산돼 어느 누구도 원래의 모기지 계약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저당채무증서를 만들어 판 투자은행들도 장외거래로 증서를 거래했기 때문에 장부에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초의 대출기관에서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에 원래의 모기지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당초 주택대출을 해준 주택대출업자들은 규모가 영세해 지난 2006년과 2007년 주택경기가 계속 침체하자 자진폐업하거나 이미 파산해 모기지 계약서 자체가 실종되고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도이치뱅크 내셔널 트러스트의 미국 클리블랜드소재 자회사인 IKB가 자기들 소유의 MBS에 적시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소재 14개 개인주택에 대해 압류경매를 법원에 신청했을 때 그 지방의 연방법원판사는 저당권의 압류권한을 구체적으로 증빙할만한 문서를 제출토록 요구해 원고 측인 도이치뱅크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결국 기각해버리고 말았다.

연방법원판사는 채무자가 서명한 저당권설정계약서 원본을 요구했으므로 도이치은행은 자기회사에 소속된 유능한 법률변호사를 다 동원해 소송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한 것이다. 자기들이 보유한 MBS에는 저당권을 양도해줄 수도 있다는 구절만 명시돼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저당권의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그 이전에는 그 증서만으로도 관례처럼 압류경매가 이뤄졌는데 이번 판결이 나고부터는 세상의 분위기가 달라져 2008년 2월 현재 적어도 5개주에서 판사들이 이 판례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주에 따라서는 사법부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도 압류경매가 이루어지는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는 채무자가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거나, 압류경매를 당하기 직전 압류경매정지 가처분신청만 하면 자동적으로 사법부에서 문서검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고의 압류경매 신청에 대해 이의신청만 하면 자동적으로  문서상의 검증을 판사가 요구한다고 한다. 이처럼 지난날 금융계에서 이룬 혁신적 금융상품이란 것들이 알고 보면 전부 법적으로 하자가 많은 휴지조각이란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되자 발행규모가 12조 달러어치나 되는 MBS나 ABS에 투자한 사람들은 이 판결 하나로 투자액을 전부 공중에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에 분노한 투자가들 가운데 일부는(주로 미국내 기관투자자들) MBS나 ABS를 판매했던 미국의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법정소송에 들어갔고 시민단체들은 이 내용을 적극적으로 미국 각지에 홍보해 채무자들에게 주택채무의 멍예를 벗겨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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