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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비정규직 교수, 他者인가
[딸깍발이] 비정규직 교수, 他者인가
  • 최재목 편집기획위원·영남대
  • 승인 2008.09.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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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편집기획위원·영남대

매 학기 열리는 대학원 학위수여식. 변함이 없다.
캠퍼스 입구부터 꽃다발이 화려하게 걸린다. 식장 주변 잔디밭부터는 검은 학위복에다 사각모가 넘실댄다. 석사 및 박사학위 수여를 축하하러 온 가족, 친지들로 북적댄다. 하나같이 ‘축하한다’는 인사로 웃음이 가득해진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해마다 이런 길을 가로질러 식장으로 향할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제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반문해보며 걷는 내 눈 앞의 화려한 광경은 문득 흑백사진처럼 빛바랜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이렇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20여명 이상이다. 학기마다 시간표를 짜지만 늘 안쓰럽다. 박사학위를 가진 비정규직 교수에게 한 강좌, 많아야 두 강좌 정도를 배당한다. 물론 그 중에는 다른 대학에 출강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소수다.

치솟는 물가, 증가하는 자녀 교육비, 그들은 뭘 먹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이런 걱정 하나 없이, 대학원을 유지하고 교수들의 월급만 보장받으려고 학생을 받아댄단 말인가. 대책 없이 학위만 주고 끝낸단 말인가. 그래서 또 어쩌겠다는 건가.

몇 해 전부터 나는 순수하게 학문만을 해서 밥 벌어먹고 살려는 대학원생은 더 이상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 사람에게 솔직한 나의 심정을 얘기한다. ‘공부해서 밥 먹고 살 생각이라면 고려를 해보게’, ‘공부할 충분한 돈이 있는가’. 별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길을 찾도록 권유하거나 다른 교수에게 가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너무 박정하다거나, 교수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에게 보다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교수의 의무 아닐까. 학생 스스로 과연 공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제대로 판단하도록 말이다.

순수 학문만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는 끝났다. 또한 무대책으로 대학과 교수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학문 후속세대’를 받아들이는 도박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매년 비정규직 교수 노조와 임금협상을 벌인다. 일부 정규직 교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엔 엄청난 보수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대단한 업적을 내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규직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나름의 특수한 메커니즘을 갖고 굴러간다. 그 논리에 갇혀 스스로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파이를 키우기에 급급하다보니, 비정규직들의 고충과 번민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먼 나라 그대들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정규직 교수들의 문제는 정규직 교수 자신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바로 자신들이 그들을 길러내고 있지 않은가. 계획 없이 자식을 낳을 수 없듯이, 앞날을 전망하며 교육을 해야 마땅하다.

자기 편하다고 다 받아들여 길러놓고서는 그 다음은모른다? 그런 자신 없는 교육을 왜 하는가. 물론 정규직 교수들의 밥그릇만 챙기려고 대학원생을 받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무책임할 바엔 대학원생을 아예 받지 않는 편이 낫다. 정규직 교수들이 길러낸 박사들. 그들은 제자인 동시에 학문을 전업으로 할 동료 학자이자 동일 노동에 종사할 교수다. 그렇다면 비정규직교수들은 ‘낯선 타자’가 아니라 학문의 토대를 쌓아갈 동일한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정규직들이 담당하다 남는 과목이나 때워주는 용역이 아니다.

부당 차별대우에 대한 ‘법적’ 지위 운운도 절실하지만, 대학사회 내에서 ‘인격적’·‘학문적 능력’으로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공감대나 기반의 확보가 우선이다. 나아가 정규직 교수들이 비정규직 교수들과 공정 경쟁하는 학문생태계의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정규직 교수 자신들의 기득권을 잠식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자생력을 길러줄, 건강한 연하의 동반자를 만나 공생하는 길이다.

 

최재목 편집기획위원·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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