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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집착에서 축제로
[문화비평] 집착에서 축제로
  • 이옥순 인도사학자
  • 승인 2008.09.0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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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인도사학자
베이징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간간히 중계방송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내 뇌리에는 인도 영화 ‘라간(Lagaan:세금)’이 맴돌았다. 1890년대 인도 농촌이 배경인 영화에서 영국인 관리는 가뭄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에게크리켓 경기를 하자고 압박한다. 농민들이 승리하면 세금을 깎아주겠으나 패배하면 세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면서. 그날부터 영국의 크리켓과 그 게임의 법칙을 배우기 시작한 오합지졸의 인도 농민들은 결국 백인 지배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라간’의 농민들처럼 서방의 게임과 게임의 법칙을 배운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이번 올림픽의 많은 종목에서 그 게임을 만들고 오랫동안 승전가를 독점해온 서구세계를 이겼다.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고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해 스포츠의 강대국임을 만방에 알린 중국이나 서구인의, 서구인을 위한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며 선전한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다.

서세동점의 물결 속에서근대 스포츠를 받아들인 ‘동양’의 이러한 성취는 우연이 아니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니 그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 키플링의 이 오만한 발언이 나온 제국주의 시대에 비서구세계에 소개된 대다수의 서구 스포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제국의 가치를 전달하고 그 존속을 추구하는 정치적 전략이었다. “유럽인은 동양을 괴물과 從으로 만들면서 인간이 됐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남성성과 강건한 몸을 과시하는 서구 스포츠는 왜소한 신체를 가진 ‘여성적인’ 동양과의 비교를 통해 서양의 역동성과 우수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20세기 후반, 나약하고 ‘뭔가 부족한 사람’이 산다고 간주된 ‘불변의 동양’은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열등하지 않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서구세계에 입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군사적, 경제적인 ‘힘’이 없어도 적어도 경기장에선 강한 자, 때로 서구 지배자를 이길 수 있었다.

페어플레이정신과 스포츠맨십, 심판에 대한 복종의 가치를 내재한 스포츠가 합법적 싸움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서구를 받아들이고 남성성과 힘을 증명하려고 나선 일본을 필두로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의 나라들은 남성성의 가치를 내재한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익혀 (경기장에서나마) 대등한 견지에서 강한 자와 싸워 이기고픈 욕망을 키워나갔다. 올림픽을 개최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유사한 전략도 추진했다.

21세기인 이즈음 스포츠에서 동서양의 구분은 많이 옅어졌다. 이번 올림픽이 보여주듯이 동양과 서양은 결코 만나지 못할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엉키며 동양이 서양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피터팬’으로 폄하되던 비서구세계 사람들이 바람직한 몸을 가진 ‘성숙한 남성’이 되어 서구인의 신체조건에 맞게 개량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의 현대사는 앞서가는 서양과 동일시되지 않는 자아, 그래서 약자나 희생자와 동일시되는 자아를 버리려고 애쓴 비극적 과정이었다.
앞에 적은 사르트르의 말을 스포츠에 빌려 쓴다면, 19세기에 정치적 의미가 덧붙여진 이른바 동양은
자아의 일부인 ‘동양적인 것’-남자답지 않고 씩씩하지 않으며 운동을 잘 못하는 측면-을 부정하고 올림픽을 만든 강건한 서구를 열렬히 닮아감으로써 ‘인간’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동양’의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 서구를 우리 안에서 도려내자는 건 아니다. 스포츠강국이 됐으니 서구를 따라잡고 그들을 이기는 데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단계를 넘어서자는 얘기다.
세계를 향해 힘과 능력을 입증하려고 초조해하기보다 모두 모인 축제의 마당에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여유로움을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 이제 메달 획득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인기종목에 편중된 관심을 해방할 때다.

식민지배자 영국에게서 “지난 100년간 배운 걸 버리는 데 국가의 미래가 있다”고 말한, 마하트마 간디의 땅 인도는 동아시아와 달리 스포츠를 통한 자아확인에 태만하다. 지난번 아테네올림픽에서 겨우 은메달을 하나 따는데 그친 인구 12억의 인도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신기록’을 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인도인이 덜 행복하거나 여전히 ‘지구상의 저주받은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나는 시간이 단기적으로는 약하지만 결국은 모든 걸 이기는 강자라고 생각한다. 1908년 제국의 몰락을 눈앞에 둔 중국이나 한국에 살던 사람들은 100년 뒤의 스포츠강국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서구를 중심에 두고 그 가치와 규준을 닮아가며 20세기를 분투한 ‘동양’은 다가올 100년 뒤에 무엇으로 평가될 것인가. 굳이 아시아적 가치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몸’의 발전에 못지않은 ‘마음’의 발전을 선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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