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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넓게 그리고 깊게
[학이사] 넓게 그리고 깊게
  • 김기현 선문대·중남미지역학
  • 승인 2008.09.0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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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선문대·중남미지역학
나의 전공은 지역학이다. 중남미 지역학. 말 그대로 중남미지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말이 좋지 1990년대 중반 멕시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지역학이라는 학문이 설 곳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지역학과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분야 분류에도 당당히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대학에서도 지역학 전공자를 교수로 임용하며, 매년 연구지원도 제법 이루어지긴 하지만 당시에는 지역학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부족했다.

이러한 현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전공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유학 시절 여러 차례 고민 했었다. 그러나 지역학은 필요하고, 지역학이 필요하다면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하는곳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끝까지 버텼다. 결국 나는 전공 덕을 많이 봤고, 또 그 덕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됐다. 지금껏 고생하는 선후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지역학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막연히 지역을 연구하는 학문은 맞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역학은 흔히 말 하듯이 한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를 학제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학제적 연구를 하겠다고 다양한 전공자가 만나봐야 서로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진정한 학제간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모든 분야를 폭넓고 깊이 있게 다 알아야 하는데 나의 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결국 지역학이라고 해야 한 분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또 기존 학문들과의 경계선이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에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인류학 전공자들로서 자신의 분과학문에서 중남미 지역을 주요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탄탄한 전공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해 사실상 학회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중남미에  지속적인 애정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이들은 분과학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이들과 소위 중남미 지역학을 한다는 나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차별성을 찾는 것이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의 중심은 분과학문이 아닌 중남미지역이라는 점이다. 나는 중남미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오고간다.

나의 학위 논문 주제는 중남미 정치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지금까지 쓴 논문들을 줄곧 살펴보면 중남미 역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 걸쳐있다. 나름대로 일맥상통하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때로는 프로젝트를 좇다보니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도 연구하게 되고, 어쩌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스페인 정복 이전의 아스텍 문명에 대해서 연구한 적도 있다. 넓게 그리고 깊게.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넓게만 파고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 지역학을 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어려움은 중남미 지역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중남미는 모두 33개국이다. 대부분 스페인어를 쓰지만, 포르투갈어, 영어, 불어 심지어 네덜란드어를 쓰는 나라도 있다.
중남미 전공자라고 해서 이 모든 나라들을 다 잘 알지는 못한다.

어떤 중남미 전문가라도 33개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에 대해 모두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기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중남미 전문가라고 하니 중남미에서 일어난 일이면 모두 다 잘 알 것으로 생각하고 글이나 인터뷰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때때로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때서야 열심히 찾아보고 대응하기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뻔한 소리만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중남미 지역학 전공자로서 앞으로의 과제는 평생을 바쳐 연구할 주제를 보다 확고히 하는 일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국내 중남미 지역학계 전체가 않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기현 선문대·중남미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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