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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실사구시의 한문학
[學而思] 실사구시의 한문학
  • 박성규 / 고려대·한문학과
  • 승인 2008.07.07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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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소위 개명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한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가 너무 깊고 방대해서 제대로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데서 오는 어려움은 그만두더라도, 한문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무관심은 견디기 어렵다. 이는 아무리 고답적인 학문이라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도움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학문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여러 계층의 인사들이 모인 문화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초면인 관계로 자기소개를 하게 됐는데 내가 대학에 있다니까 무슨 분야를 전공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었다. 한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니까 옆에 있던 어떤 기업인이 대학에 그런 학과도 있느냐고 묻고는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자리에서 한문학이 한자로 표기된 우리 고전문학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그 분은 내 말을 구차한 변명으로 생각하는지 달갑게 여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런 현상은 대학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계열별로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은 1학년 말이면 자신이 대학에서 전공할 학과를 지원하게 되는데 한문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의 숫자는 민망할 정도로 적다.

학생들에게 왜 한문학과 지원을 기피하는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문학을 전공해봤자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식인들 가운데에서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한자만 배우면 되지 왜 굳이 한문학과에 가서 고리타분하고 골치 아픈 한문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들 중에도 한문학을 중국문학의 한 아류로 인식해 한문학이 중국문학과 크게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어 혀를 차게 된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한문학에 대한 이 같은 인식과 시각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한문학 관련 학과는 1973년에 처음 설립돼 3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한문학에대한 사회의 인식이 이처럼 불건전하게 이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멀리로는 우리나라가 문화적 후진국으로 인식되던 일본의 압제 하에서 우리문화 말살정책이 자행되자 자연스럽게 대두된 민족주의 열풍으로 인해 중국 글자인 한자로 기록된 한문학에 대한 시각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해방을 맞아 우리의 주권을 되찾았지만 갑자기 침투해온 실용적인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그때까지 잊혀졌던 한문학을 주체적으로 성찰하기가 어려웠던 것에도 그 탓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주원인을 한문학을 연구하는 오늘의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될 것이다.

대부분의 한문학 연구자들이 고답적인 擬古 취향에 빠져 한문학이 지니고 있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효용성을 몰각했기 때문이다. 한문학을 연구하는 우리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오늘의 우리문화가 천박하다느니 정체성을 상실했다느니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우리문화의 보고인 한문문헌을 살펴 그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비실용적인 연구 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연구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한국한문학회는 우리 한문학에 나타난 性담론이란 주제로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한문학에 나타난 性에 관한 담론을 점잖기로 이름난 한문학회에서 어찌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느냐고 해서 지금까지 금기시했던 주제를 가지고 발표회를 가지게 되자 의외로 여러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독자들을 위한 보도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이 기사를 읽은 분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한문학 연구가 상아탑 속에서 나와 현실과 만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발표회가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회원들이 肉眼으로도 한문학을 살필 수 있고, 한문학이 우리의 침실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기여하게 됐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앞으로 한문학이 오늘의 인문학으로 살아남기 위해 실사구시의 연구태도를 무시할 수 없다는 다짐을 담고 있는 듯했다.

 

박성규 / 고려대·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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