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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평강공주 생각
[문화비평] 평강공주 생각
  • 최재목 / 영남대·철학
  • 승인 2008.06.3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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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가면/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도 못 받고/그냥 죽을텐데 땅도 없고 돈도 없으니/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다오.” 6월 6일 촛불집회에서 가수 안치환씨가 부른 「유언」이란 노래다. 촛불 시위 도중 어느 시민이 쓴 글에 곡을 붙인 것이라 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참 슬프고도 쓸쓸한 노래다.
‘遺言’이란, ‘죽음에 이르러 남긴 말’이다.

누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건가.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할 우리 국민들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유모차를 끈 젊은 부부들까지, 남녀노소 막론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모두들 미래의 安危를 우려하며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를 메웠다. ‘念念菩提心하면, 處處安樂國이라’ 했지만, 국민들 속마음은 ‘念念狂牛病에 處處阿修羅’였다. 자식이란 부모라는 ‘바탕(本)’에서 나온 ‘가지’이고(身也者, 親之枝也)(『小學』), 부모가 남긴 ‘피/살붙이(父母之遺體)(『禮記』)이다. 그러기에 先代들이 이 혈육의 ‘가지’, ‘피/살붙이’가 상하지 않도록, 井華水 한 그릇 떠 놓고 천지신명에게 안녕을 빌지 않았던가. 그 면면한 마음들의 點火였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거론 된 ‘대운하 건설’, ‘몰입식 영어수업’, ‘물가 상승’ 등등 波高에 억눌렸던 불만의 응어리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건 때문에 촉발된 것뿐이다. 죽음을 앞둔 비장한 마음으로 부르는 「유언」은 정부를 향해 회개하라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부는 딴소리로 일관했고, 사태가 급박해자 떠밀리듯 재협상을 하는 흉내를 냈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밀어붙이면 돼!’라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狂牛病을 뒤집어쓰고 狂愚가 돼 갔던 것은 아닌지.  촛불로 메운 거리는 생명의 축제이자 몸의 시위였다. 축제·시위의 ‘문지방(Limen)’엔,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쓰러져간 우리 역사 속 수많은 ‘투쟁의 혼령들’이 살아있다. 그러니, 거긴 함부로 밟고 들어설 수 없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티켓 삼아 線을 넘고 넘었다. 촛불의 심지는 울분의 뇌관으로 타 들어가는 導火線이랄까. 가물가물 이어져 불빛에 묻히지 않던 길. 바로 「하늘이 변치 않는 한 길(道) 역시 변치 않는다(天不變, 道亦不變)」(董仲舒, 『天人三策』)는 그것. 아니,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는 그 말에 어울렸다.

‘2MB’정부를 국민들은 밴댕이 속의 ‘바보’라 통칭한다. 정부를 압박하고 꾸짖는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賢者이다. 국민이 등 돌리고 나면 2MB 정부는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나. 「하느님, 제가 죽어버리면 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Was wirst du tun, Gott, wenn ich sterbe?)」란 릴케의 시처럼 말이다. “나 없이 당신은 무슨 이유를 갖겠습니까? (중략) 텅 빈 해변에서, 낯선 돌들 사이에서//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두렵습니다.” 신에게 ‘내(인간)’가 없으면 어떡하겠냐고 으름장을 놓고 대든다. 그렇다.

국민이 떠난다면 국가는 또 정부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流言은 知者에게서 멈춘다(流言止于智者)」(『荀子』)고 했다. 「유언」이란 노래가 유언비어인지 어떤지를 판별할 수 있는 智者가 바로 국민이다.
「귀한 것은 백성이오, 그 다음이 社稷이고, 임금은 그 다음이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孟子』). 국민이 하늘이다. 오만하면 천명(天命)이 바뀐다(革) 하지 않았던가. 정치의 기초적 내공(小學) 없이 큰 비전을
제시하는 단계(大學)로는 넘어 갈 수 없다.  스님들이 海潮音을 들으며 명상 수행을 하듯, 중생의 소리(世音)를 바로 ‘바라보는’ 보살이 되라.

2MB정부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부터 할 일이다. 자신의 소리를 죽이고 바깥의 소리를 오케스트라로 삼았던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음악처럼. 2MB 정부가 ‘利&肥정부’로 되려면 스스로 平岡公主가
돼야 한다. 자신들이 바보로 여긴 국민=溫達을 찾아나서 그의 희망과 결혼하고, 2MB 정부의 패물이 된 臆見을 팔아 온달의 살림을장만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온달의 꺾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먹고 살만한’ 내일을 설계하는 따뜻한 CEO가 돼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病苦’는 향후 5년간을 위한 ‘良藥’일지도 모른다.

최재목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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