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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대학은 공장이 아니다
[문화비평] 대학은 공장이 아니다
  • 조환규 /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8.06.1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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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은 왜 공장이 될 수 없는가’ 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듣기에 곤혹스런 비판중 하나는 “대학에서는 정작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안 가르치고 쓸데(?)없는 것만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사회에서 어떤 요목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하는지 ‘소비자 권장 커리큘럼’을 좀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마도 그렇게 다양, 다종의 현장업체의 입맛에 딱딱 맞는 기술만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면 대학교육은 대략 10년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현 정권의 모토가 실용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들어 대학에서도 부쩍 실용적인, 다시 말하자면 현장에 바로 써먹는(!) 기술에 대한 요구가 심해지고 있다. 이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요즘은 교수별 능력평가에도 회사와 공동 개발한 기술이나 그러한 기술을 판매한 실적과 같은 직접적인 이익창출 행위에 특별히 가점을 주기도 한다.

대학이 국가 산업체의 한 일원으로 스스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당위는 미국의 베이-돌 법안이 그 단초를 놓았다. 1980년 미국 상원을 통과한 이 베이-돌 법에 따르면 ‘연방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았어도 연구 성과에 대한 특허권은 연방정부가 아닌 대학 혹은 연구 기관에 귀속시킬 수’ 있게 됐다. 베이-돌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대학에서 만든 특허는 300%나 증가했다.

하지만 베이-돌 법이 나온 지 거의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선악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애초 기대했던 기술 개발 효과는 미미하고, 지나친 상업화만 부추겼다는 평가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이전촉진법 제정(2000년)과, 산업교육진흥법 개정(2003년)을 만들어 대학을 이익 경쟁에 본격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러한 류의 법이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미국의 한 유명 교수가 기른 실험용 유전자 조작생쥐를 다른 대학 친구 교수에게 몇 마리 준 것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연히 학교재산을 자기마음대로 빼돌린 행위에 해당돼 민사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중대 범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베이-돌 법이 통과된 이후로는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이 가진 특허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거나, 연구 동료들과 학술적으로 공유하는 행위조차 규제를 받을 것이다. 대학기술의 상업화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D.그린버그에 따르면 대학연구의 상업화는 열정에서 시작해 법원의 송사로 종결된다고 했듯이, 지금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 만든 기술로 떼돈을 버는 경우는 우리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제일 잘 나가는 미국에 있어서도 매우 드물다. 그것도 의학, 약학 등 몇 분야에만 국한돼 있다.
AUTM(미국 대학기술관리자협회)에서 주장하듯 베이-돌 법안이 엄청난 고용을 창출했다는 것은 대부분 확인할 수 없는 제 자랑에 불과하다.

특히 상업화에 따른 직접적인 이익이 없는 연구는 대부분 무시되고 쓸데없는 학과는 정리대상이 된다. 미국과 같이 연구비가 풍족한 경우도 이럴진대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우울하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서울대는 한 특허소송 전문 외국기업의 공세에 따른 경제적 부담 때문에 동물복제 사업을 사실상 철회한다고 했다. 한미 FTA가 되면 이러한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 특허공세를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싸워 낼 대학이 있을까 염려가 된다.

잘 알다시피 대부분 시한부인 석·박사 학생을 기반으로 한 대학 실험실의 영업행위에는 여러 부작용과 무리가 따른다. 또 사업의 내용이라는 것도 그렇다. 대학이 올망졸망한 기술로 국내업체와 경쟁을 해 시장을 독식한들, 국가적으로 보면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대학은 언제나 교육이 중심이 돼야 하고 교수의 중심에는 사업보다는 학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수들이 일 년간 저술해내는 책의 수를 외국과 한번 비교해본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볼 수 있다. 수영선수에게 장대높이뛰기와 탁구, 축구 모두를 잘해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듯이 교수에게 배반적인 두 일, 교육과 영업, 모두를 독려하는 것에 따른 최종 결과는 명확하다.

왜냐하면 상업적 성공은 교수의 개인기나 대학의 정책이 아니라 복잡한 시장구조와 다양한 정치적 과정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환규 /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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