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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문화비평]“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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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눈을 떠, 다가올 하루를 그려볼 때면 어떤 기분이신지. 지켜야 할 약속과 가야할 길이 있을 뿐인 그저 희뿌연 삶, 매캐한 미래. 그 한가운데서 오늘과 내일, 한 달 뒤와 일 년 후를 생각할 때면 어떤 느낌이신지. 상큼한 흥분에 잔 떨림이 이는지, 아니면 무거운 한숨에 다시 눈감아 버리시는지. “고삐 풀린 경유 값, 서민경제 벼랑 끝”,“6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군홧발에 7번 밟힌 서울대 여학생”…. 요 며칠 새의 뉴스들은 암울하다. 아니, 흉흉하다. 그런데도 여기에 더해지는 대통령의 말. “석유 값과 원자재스 값, 식량 가격이 껑충 뛰어올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걱정된다.” 불확실한 오늘, 불투명한 내일. ‘페인트 잇 블랙’. 롤링 스톤스의 저 유명한 노래. 정녕 대통령의 말은 까만 날들을 아예 새까맣게 덧칠한다.

불확실성은 본디 시금석이다. 긍정과 부정, 상승과 하강, 그리고 활력과 無力의 경계를 시험하는.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을 세상에 남긴 자. 정녕 이의 없으리라. 14세기 중기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 그 공포 한가운데서 저술된 이 작품이 오히려 웃음을 선물한다는 것에는. 천하의 거짓말쟁이 차펠레토의 이야기, 천하의 순박한 칼란드리노와 그를 골탕 먹이는 브루노와 부팔마코의 이야기 등 보카치오의 작품은 해학의 寶庫이다. 어디 이 뿐인가. 『데카메론』은 도발적이기도 하다. 페론도의 아름다운 아내, 늙은 푸치오의 능금 같은 아내 등등, 남의 사람을 꼬드겨 이 지상에서 “천당에 오른 자들”의 이야기들로 넘쳐나니 말이다. 그래도 보카치오의 작품은 씁쓸하다.

불확실성 앞에서 가라앉기 때문이다. 도통 방향 못 잡고 이리저리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우리 인간은 갖가지 운명에 희롱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어둠 한 가운데서의 작품답게, 보카치오는 운명을 인간사의 주관자로 등극시킨다. 그리고 이 변화무쌍한 운명의 변덕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奸計를 삶의 지혜로 내세운다. 이른바 奇智를 통해 부정행위의 발각 위기에서 ‘슬기롭게’벗어나는 아낙네들의 이야기들과 서로 속고 속이는 여덟째 날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좋은 증거인가. 하지만 이 모두는 부정과 하강의 무기력한 몸짓이다. 운명이 지배하는 불확실한 삶속에서 그저 순간을 무마해보려는 임기응변의 잔꾀일 뿐이다. 스스로 되뇌는 “넌 할 수 없어.”

또 다른 조반니는 어떠한가.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31살의 나이로 요절한 이 르네상스기의 천재는 1486년 23살의 젊은 나이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논고』라는 걸작을 토해 낸다. 論敵들과의
한판 승부를 시비 거는 이 당찬 작품에서, 그는 불확실성을 인간 존엄성의
근거로 못 박는다. 그에 따르면, 조물주는 인간이라는 최종최대의 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그 결과 고민에 빠지신다. 자리배정 문제 때문이다.

하등 생물체로부터 케루빔과 세라핌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가치에 따라 階序的으로 자리 잡은 존재의 사슬, 이 어디에 인간을 집어넣을꼬. 조물주의 결정은 결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곧 어떤 고정된 자리에 붙들어두는 대신, 인간을 끝없이 떠돌게 한다는 것이었다. 경쾌한 傾倒, 유쾌한 가치전환. 조반니 피코의 재치가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숨에 불안의 근원을 희망의 원천으로 뒤집는다. 그가 볼 때, 인간존재의 불확정성이야말로 인간의 무한한 상승 가능성, 곧 인간이 세라핌보다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웅변한다. “우리의 영혼을 성스러운 야심으로 물들이자. 平凡에 만족치 말고, 最上을 열망하자. 그리고 원하면 할 수 있기에, 그것을 획득하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자.”

불확실성은 시금석이다. 누군가 불투명한 것들에 부딪혀 指東指西의 언변과 朝三暮四의 걸음채로 右往左往할 뿐이라면, 그/그녀는 부정이고 하강이며 無力이다. 그러나 누군가 퍼붓는 물줄기속에서도 고개 곧추세워 나아간다면, 그/그녀는 긍정이고 상승이며 활력이다. 그리고 누군가 아직도 긍정으로 충일할 때, 중/고생이든 유모차의 젊은 아줌마든 넥타이 아저씨든 고령의 할아버지/할머니든 스물 셋의 젊은이가 된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自尊과 飛翔의 거센 의지가 된다. 까만 오늘, 그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것들을 그 정당한 자리에 박아두려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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