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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自律化는 레토릭인가
[대학정론] 自律化는 레토릭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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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교육정책과 관련, 대학에게 자율을 되돌려주겠다고 공언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자율화 정책의 핵심은 대학입시와 관련된다.

대학입시 부문은 지난 정부에서 ‘3불 정책’의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관리해온 영역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공교육 황폐화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이제 새 정부 들어서 대학입시를 자율화하겠다고 공언한 이상, 자율에 따른 책무성은 국가에서 각 대학으로 넘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자율화와 관련된 무게 중심이랄까, 질문의 과녁은 과연 우리 대학이 입시자율을 통해 그토록 선망해온 ‘세계 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냐는 것이 돼야 한다. 입시 자율화가 교육 질 개선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공교육의 책무성을 대학에 떠넘기기 위해 대학 자율화를 추진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이 이 무거운 자율화 과제를 떠맡게 된 이상, 대학은 거시적인 틀에서 사유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들려오는 “입시 제도를 바뀌면 고교 교육이 풍성해질텐데”라는 말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 대학들이 얼마나 중등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입시 자율화를 추진함으로써 대학은 교육 수월성 확보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저마다 전략을 쥐어짤테지만, 자율이라는 ‘권리’ 뒤에 남는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입맛에 맞는 인재만 선발하면 쉽게 세계적 대학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지도 더 숙고해봐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입시 자율화가 또다른 사교육 시장 확대, 공교육 황폐화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누가 책임져야 할 지 따져봐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 이른바 명문 대학과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학들이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율을 하나의 권리로 향유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무한한 책무성을 지녀야 한다. 투명한 사회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자율화 조치가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결국 자율화의 핵심은 입시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육을 어떻게 재조직하느냐의 문제다. 좋은 인재를 데려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인재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비전 속에서 키워낼 지 치밀한 전략이 부재한다면, 자율화 조치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교육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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