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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촛불의 아름다움
[문화비평]촛불의 아름다움
  • 홍승용 / 대구대·독문학
  • 승인 2008.06.02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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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촛불은 화염병이나 횃불만큼의 파괴력도 가변성도 없고 전깃불처럼 밝지도 안정적이지도 못하며, 그저 작은 공간을 은은히 밝히는 미미한 존재다. 유사 이래 늘 그렇게 존재해온 촛불이 어느 한 순간 한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력의 상징으로 전화했다. 역시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회용 종이컵이 그 전화의 물적 조건이었다. 일단 종이컵을 통해 나름의 안정성을 얻자 촛불은 개별적으로 별 힘 없는 평범한 시민들의 막강한 무기가 되었다.

촛불의 마력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단 편하게 하는 데에 있다. 화염병을 함께 던지자고 하면 기겁하고 달아날 구경꾼들까지도 촛불 정도는 큰 부담 없이 함께 들 수 있다. 이러한 자발성의 효과는 집회참여자의 수를 늘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자발적 참여자들을 상대로 배후와 주동자를 색출하겠다고 80년대식 공안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실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추태가 된다. 자그마하고 부드러운 촛불은 폭력보다 비폭력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온 세상에 퍼뜨린다. 이 비폭력 분위기는 전적으로 진압자의 정치적 부담이 된다.  

거리로 나온 수천수만 개의 촛불을 딱딱한 공권력으로 누르려는 것은 처음부터 승률이 형편없는 게임이다. 그래도 현 정부가 촛불과의 전쟁을 자꾸 키우려 든다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믿을 만한 것은 사실 넘치고도 남아 보였다. 다수 국민이 도덕성보다 경제 살리기를 택했고, 어지간한 도덕적 허물이나 범법 경력까지 눈 감아 주기로 했다. 보수야당 혹은 유사여당 빼고 알짜여당만 해도 과반선을 넘어섰다. 개혁이나 진보의 움직임은 영 신통치 않고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대책 없이 냉랭하다. 학생들은 성적과 취업과 코앞의 재미에 영혼을 내놓고, 선생들은 프로젝트에 연구비에 아니면 구조조정에 목을 맨다. 한풀 꺾인 시민운동쯤은 뉴 라이트 하나만으로도 요리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가. 노동계야 원래 지뢰밭이지만, 그래도 그 반쪽이 체면이고 노선이고 다 훌렁 벗고 선거운동원으로 뛰어주지 않았나. 등 뒤에서는 언제라도 두 팔 걷고 나서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줄 아는 지역패권주의가 밀어주고, 무엇보다 든든한 조중동과 SBS와 네이버가 받쳐주지 않는가. 자금줄이야 애초부터 걱정한 바 없는 터이고, 아직 여기저기서 버티고 있는 진보 코드들은 시간차 공격으로 하나 씩 정리하면 될 것이다.  

정부 여당이 밀어붙여서 안 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일만한 환경이다. 그래서 취임 100일간 좀 무식할 만큼 솔직했고, 변변한 정치적 수사법도 없이 상위 1%를 위한 반사회적 정책들을 쏟아냈다. 덕분에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에 너무 일찌감치 불이 붙고 말았다. “독재”니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기호들 속에서는 광우병 괴담 차원을 넘어선 네티즌들의 분노와 결의가 부글거린다. 촛불은 이 분노를 아직 승화의 수준으로 조절해 놓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수없이 많지만, “미는 생명이다”라는 체르니셰프스키의 단순한 규정처럼 산뜻한 것도 드물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반생명적인 정책들은 추한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분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수 약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권력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할 뿐 아니라, 미적 관점에서 추하기도 하다.  

반생명적 폭력 정책에 맞서는 촛불은 아름답다. 어쩌면 이 미감은 어떠한 정치경제학적 이해타산보다 더 큰 정치적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부도덕한 권력의 시련기가 계속될 듯하다. 선거 기간만이라도 추한 본색을 감추고 보자는 셈법으로는 시련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설혹 하이에나에게 풀 뜯어 먹고 살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공존과 공유를 향한 근본적 자세 전환을 권하고 싶다.

홍승용 / 대구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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