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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원칙’이 필요하다
[대학정론] ‘원칙’이 필요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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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꼭 100일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나라 정세는 시계 제로 상태다. 경제 살리기, 실용주의를 기치로 당선된 그건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기대고 선 통치이념, 국정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온 등소평도 실용론의 선배임에 틀림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시대 한국의 실학자들의 사상도, 철학으로서의 실용주의를 들고 나온 제임스나 듀이 등의 미국 실용주의도 다 같은 ‘실용주의’ 반면교사들이다.

실용주의가 원칙이나 명분, 자기 기준도 없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쓸려가는 삶의 방식이라거나 나아가 치세의 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렇게 둘러올 필요가 있을까. 實事求是의 실용이야말로 자기 원칙이 엄정해야만 존재의 의미가 뚜렷하다. 최근의 정국 변화나 民意의 흐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지난 대학정론에서 교과부 김도연 장관의 책임을 따진 바 있다. 곳곳에서 김 장관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그의 경질까지 점치고 있는 판이다. ‘특별교부금’ 사태가 그의 퇴진을 운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모든 책임이 교육과학부 장관에게만 있는 것인가를 묻고 싶다.

그는 교과부 수장으로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게 그만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은 장관의 잘잘못 이면에는 청와대 중심의 교육정책 드라이브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청와대가 그렇게 ‘완장’차고 골목마다 누비면 일은 누가 한단 말인가. 대학자율 등 이명박 정부가 내건 각종 교육정책 추진 과정에서 김도연 장관은 자신의 소신을 충분하게 반영할 수 있었을까. 교육수장으로서의 무한 책임감을 지고 교육현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거나 무능일 수 있지만, 이보다 현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과 방식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역량에 걸맞고, 자리에 부합한 책임과 권한, 의무 부여는 중요한 기본 사항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한 인사가 청와대 고위직 제의에 응하지 않았던 일화가 있다. 그가 제의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책임과 권한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김도연 교육과학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수장 1호가 됐다. 앞에 장관을 세워놓고 청와대에서 감 놓고 배 놓고 다 해버린다면, 이게 하나의 ‘기준’, ‘원칙’이 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일할 사람 앉혀서 제대로 일하게 하는’ 진짜 원칙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그런 원칙조차 없이 장관이 바뀌면, 앞으로 수십 명의 장관이 교육수장으로 온다한들 터럭 하나 바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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