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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영향평가로 세상 바라보기
[학이사]영향평가로 세상 바라보기
  • 이종호/ 청주대·환경계획학
  • 승인 2008.05.26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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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입학해 권태준 선생님에게서 ‘계획과정론’과목을 수강했다. 그 때 합리성이 강조됐고 합리적 판단을 위해 분석적 판단력과 종합적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하지만 공대를 졸업한지 몇 달 되지 않은 대학원생이라 너무나도 뻔한 합리성을 따지는 계획이론의 중요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학 교수가 된 후 1994년부터 ‘환경영향평가’라는 과목을 담당하게 됐고 관련 학회에도 가입했다. ‘환경영향평가제도’란 대규모 개발사업 시행 전에 그로 인한 환경 영향을 예측평가하고, 예측되는 악영향에 대한 저감방안이나 대안을 마련하는 제도이다.

환경영향평가제도가 계획이론에 입각해 개발에 대한 정책결정과정이나 계획과정을 객관적, 과학적, 합리적으로 유도하는 제도라는 것을 계획이론을 배운지 15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환경영향평가 강의와 이 분야 학회 활동 덕분인지, 회의나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와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측하는 ‘마음’ 영향평가 내지 ‘언행’ 영향평가를 하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을 우연하게 접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음속에 4가지 창이 있는데, 첫째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영역인 ‘열린 창’,  둘째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영역인 ‘비밀의 창’, 셋째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영역인 ‘맹목의 창’, 끝으로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영역인 ‘미지의 창’이다.

명상에 깊게 들어갈수록 ‘맹목의 창’이 점차 넓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고 한다. 명상에 심취한 사람이나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개 주관적 확신은 강한 반면, 객관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그 사람의 확신에 동조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까지 객관적, 현실적 판단력이 마비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찬성·반대 입장을 가진 분을 분류한다면 소신파와 대세순응파로 나눌 수 있다. 대세순응파는 인간관계나 세속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운하를 찬성·반대하는 분이고, 소신파는 철저한 연구 후 소신껏 찬성·반대하는 분과 별다른 연구 없이 맹목적으로 찬성·반대하는 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맹목적으로 찬성·반대하는 분은 ‘맹목의 창’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소속된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는 지난 4월 ‘한반도 대운하와 영향평가’라는 주제로 찬반 동수의 전문가를 모시고 토론회를 가졌다.
차라리 대세순응파로 보이는 전문가가 많았더라면, 비전문가는 대운하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열린 창’의 소신파인지 또는 ‘맹목의 창’의 소신파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질 않아 비전문가는 스스로 옥석을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설사 전문가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세상일은 당사자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반도대운하와 같은 대규모 개발정책(계획, 개발사업)의 경우, 외국의 대규모 개발정책(계획, 사업)의 사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학회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가 알려준 보우대사(1509~1565)가 불교 중흥에 힘썼다가 제주도에 유배되면서 죽음을 예감하고 남긴 임종게를 되새기면서 세상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幻人來入幻人鄕 허깨비 사람이 와서 허깨비 사람 마음에 들어
五十餘年作戱狂 50년 너머의 세월을 희롱대는 미치광이가 되다
弄盡人間榮辱事 인간세상의 영화 굴욕을 희롱으로 다했으니
脫僧傀儡上蒼蒼 중이라는 허수아비를 벗고 창창 하늘로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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