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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열정] ‘품질교육’의 아방가르드
[비전과 열정] ‘품질교육’의 아방가르드
  • 이진우/계명대 총장
  • 승인 2008.05.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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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이 또 한번 변화와 혁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세계최고의 대학 진학률이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고등교육은 지난 반세기동안 엄청나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대학이 가장 변하지 않는 곳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꾸준히 변화하고 있으며, 지식기반시대에 혁신을 요구하는 시대적 도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미래를 보고 앞서가는 사람에겐 현재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미진해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도전이 그만큼 거세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학이 우리 사회를 선도하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혁신만을 외친다면, 우리는 어쩌면 현재를 살지 않고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뛰는 우를 범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육의 품질’이다. 대학의 규모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교육의 품질은 선진국의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도 세계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비율은 55개국 중 4위를 차지해 최상위권이지만,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중 하나인 ‘대학교육의 경쟁사회 요구 부합도’에서 53위를 차지해 꼴찌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55개국 중 31위를 차지한 것이 모두 대학 때문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현재 대학의 최우선 과제는 교육품질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정부는 통제와 간섭 대신에 대학의 자율을 강화함으로써 교육의 내용을 혁신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자율은 한편으로 대학에게 스스로 미래지향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조정 없는 무한 ‘경쟁’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자율은 대부분의 대학들에게 양면의 칼로 다가온다. 한국의 대학은 자율화 시대에 진입함으로써 성장과 후퇴의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을 미래 발전의 토대로 삼으려면, 우리는 우선 교육의 ‘양’보다는 ‘질’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 대학의 총장들이 우리 대학의 엄청난 규모와 화려한 시설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얼굴이 뜨거워졌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외국의 대학들을 방문하면서 시설의 외관은 보잘 것 없지만 탁월한 연구 환경과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총장이 바뀔 때마다 더 높이 더 크게 올라가는 건물과 호텔처럼 화려한 외관을 자랑스러워하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 대신 우리 학생들을 경쟁력 있는 인재로 만들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 품질 교육 없이 성숙한 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의 품질을 향상시키려면 교수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의 패러다임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상아탑에서 사회의 기대와 필요에 호응하는 대학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학이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될 때에만 사회는 대학을 지원한다. 대학이 사회의 기대와 욕구에 호응할(responsive) 때에만 대학은 사회에 대한 책무(responsibility)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수들은 여전히 상아탑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과 사회와 같은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려 든다. 자신의 지식을 최고로 생각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을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인도하지 않고서는 결코 품질 교육을 달성할 수 없다. 어떻게 교수들을 품질 교육의 아방가르드로 변화시킬 것인가.

끝으로, 교육의 품질을 강화하고 교수들을 변화시키려면 대학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학의 투명화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선, 교수와 학생, 대학과 사회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간을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학의 경우 사무공간과 일부 연구실의 문과 창문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나서부터 학생들의 태도가 개방적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다음으로, 대학의 미래에 관한 논의와 대화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없으면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율이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 대학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율이 발전을 가져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압축성장이 압축성숙으로 전환되기 위해서 자율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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