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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스펙터클 읽어내는 열쇠, 비교도시사의 가능성
제국의 스펙터클 읽어내는 열쇠, 비교도시사의 가능성
  • 교수신문
  • 승인 2008.03.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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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 『공간 속의 시간』 도시사연구회 지음 | 심산 | 2007

“산책자는 군중 속에서 피신처를 찾는다. 군중은 베일(천으로 된 화면)이며, 이를 통해 친숙한 도시가 산책자에게 환등상으로 불러내진다.” 자본주의 도시를 투명인간처럼 배회했던 만보자 발터 벤야민은 그렇게 썼다. 도시 풍경을 환등기에서 나오는 영상처럼 군중이라는 장막 위에 비쳐보며 자신은 그 군중 뒤(속)로 숨었다. 그가 본 환등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몰인정, 비인간성, 물신화 풍조, 오염과 범죄의 온상, 그러나 동시에 문화와 교류와 자유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공간, 아마 그런 모순된 요소들이 중첩돼 있었겠지. 느리게 걷는 관찰자의 망막에, 뇌리에, 그리고 마음에 박힌 상은, 그런 도시가 지나온 과거의 흔적들을 배경으로 깔고 그 다채로운 모습들을 펼치고 있었을 것이다.


도시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벤야민을 읽는 이유는 바로 그런 태도에 있다. 백화점에 쇼핑 나온 여자들의 드레스 주름 장식이라는 가장 사소한 풍경으로부터 자본주의의 욕망과 역사를 간파한 위대한 관찰자. 거리 이름과 같은 도시의 겉껍질에서 역사와 정치를 깊게 사색한 철학자. 끊임없이 시장의 주변을 서성였지만 결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던 우울한 지식인. 이제 우리는 그의 글 너머로 보이는 이 도시의 영상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사실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도시는 낯선 공간이 아니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그리고 근대이후에는 더욱더 인간 활동의 중요한 부분들이 도시에서 진행돼 왔다. 벤야민에 기대건 아니건 역사 연구의 단위는 자연스레 일정 지역범위 혹은 도시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저 연구의 지역적 범주가 도시인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도시사’라고 구분 짓기는 어렵다. 무언가 도시적인 것, ‘도시성(urbanity)’이 역사 발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을 밝혀내거나, 혹은 그 도시적 특성이 인간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관계를 구명한 경우를 우리는 도시사라고 말한다.


『공간 속의 시간: 유럽, 미국, 동북아 도시사 연구 현황과 전망』은 그러한 의미에 충실한 도시사의 현주소를 소개하는 지침서이다. 서로 다른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편, 함께 도시사를 연구하면서 공동작업을 추구하는 일단의 도시사 연구자들의 모임인 도시사연구회가 엮어 낸 책으로, 11명의 연구자들이 쓴 12개의 논문을 모았다. 이 책은 서양의 고중세와 근대 도시에 대한 연구들 뿐 아니라, 일본, 중국, 한국 등 동북아 3개국 도시사의 현황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나 이 분야의 연구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픈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역사에 대한 ‘도시성’의 개입 밝혀


분명 이 책의 연구 성과들이 주목하고 있는 도시사는 그 어떤 것이건 매력적이다. 고대도시의 건축이건, 중세도시의 상업과 여가이건, 근대도시의 공간분리와 갈등이건, 도시라는 공간과 도시적인 특성은 역사에 개입해왔다. 여기서 도시는 인간의 역사에 그저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얼핏 보면 마치 인간이 공간을 전유하면서 이용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이념의 산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도시는 이념의 공간으로서 시민의 생활과 미래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 상호작용을 드러내야만 비로소 역사 연구의 두 축인 시간과 공간 모두가 도시사라는 이름아래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분명 이 책의 연구 성과들이 주목하고 있는 도시사는 그 어떤 것이건 매력적이다. 고대도시의 건축이건, 중세도시의 상업과 여가이건, 근대도시의 공간분리와 갈등이건, 도시라는 공간과 도시적인 특성은 역사에 개입해왔다. 여기서 도시는 인간의 역사에 그저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얼핏 보면 마치 인간이 공간을 전유하면서 이용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이념의 산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도시는 이념의 공간으로서 시민의 생활과 미래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 상호작용을 드러내야만 비로소 역사 연구의 두 축인 시간과 공간 모두가 도시사라는 이름아래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장이 독립적인 내용을 다루는 만큼, 그 모두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광범위한 시대와 지역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적어도 각  영역의 범주를 넘어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떤 흐름은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적 공간으로서 도시의 역사’이다. 시민의 문화적 정체성, 도시공간의 이미지와 상징의 체계, 재개발의 미학과 환경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관심은 최근 영미권, 프랑스, 독일, 그리고 한국에서의 도시사 연구에서 비슷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밝혀두자면, 이 책의 공저자로 참여한 사람이 쑥스러운 리뷰를 쓰게 된 까닭은 책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도시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젠더, 지리, 사상 등의 다양한 영역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골고루 살펴보기에 도시는 적합한 공간이다. 제국이나 국가권력의 전략과 피식민과 대중의 대응 전술도 도시사의 공간분석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동적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지역 간의 관계나 이민, 인종 문제들을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나온 도시사 저서는 많지 않다. 한국사에는 경주, 목포, 서울, 개성 등의 역사를 쓴 책들이 출판돼 고무적이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도시의 연대기에 그치는 단계이며, 이제서야 식민지 도시 공간의 근대성이나 공간과 권력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상태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사에서도 본격적인 도시사 연구는 몇 편의 논문에 그치고 있고, 중국사에서는 상해 정도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정도이다. 물론 이러한 결여가 앞으로의 성과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리라 낙관하지만.


도시사 소개 입문서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는 책이라고 자부하지만 이 책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여러 공저자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연구 대상과 내용의 통일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각 장이 ‘현황과 전망’이라는 부제에 들어맞기는 하지만, 어떤 글은 전체 국가사에서 시대별 대표 저작을 중심으로 정리해 놓고 있는 반면 어떤 글은 최근 신간이나 최신 동향을 위주로 정리가 돼있다. 또 어떤 경우는 사례 연구를 통해 도시사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전체적인 면에서 큰 흠이 되지는 않지만,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구 대상과 내용의 통일성 지켜지지 않아”
이 책은 비교도시사를 제안하면서 책을 마친다. 확실히 세계의 도시들은 비교 가능한 대상들이다. 문화와 역사를 주장했지만 사실은 정치 경제적 사업이었던 청계천 복개와 같은 사건은 다른 도시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개발지상주의로 얼룩진 근대사에서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상흔을 남긴 ‘불도저’라는 별명의 시장은 서울 뿐 아니라 뉴욕에도 뉴델리에도 있었다. 여러 도시에서 빈민의 생존권, 부동산 투기와 거품, 고급화 등의 문제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사한 발전 양상을 두 개 이상의 도시에서 단순 비교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려는 비교도시사는 아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경험은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비교적으로 검토할 바탕을 마련해 두었다. 이를테면 영국 제국주의의 치하에 있었던 런던, 뭄바이, 케이프타운, 쿠알라룸푸르는 어떤 근대성, 혹은 어떤 제국의 스펙타클을 드러내는가. 그들에게서 어떤 차이와 균질을 분석할 수 있을까. 도시가 고립무원의 섬이 아닌 이상 제국 도시와 식민 도시의 경험을 비교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된다.


한편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도시들은 어떤 상호작용, 모방, 침투, 견제를 주고받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비교사 연구의 출발점이다. 최근 소위 제3세계 지역의 도시들에 서로 유사한 슬럼의 경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와 연성 제국주의의 작동으로 인한 것이라는 마이크 데이비스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는 비교도시사의 중요한 성과물이다. 자본의 순환을 위한 건조환경의 파괴와 생산, 권력의 공간화 문제, 정보화 도시의 사회적 작동방식과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다뤄왔던 데이비드 하비, 샤론 주킨, 사스키아 사센, 그리고 마누엘 카스텔의 문제의식들이 녹아들어 이처럼 세계적 차원의 비교사로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연작으로 기획하는 도시사 연구 총서의 첫 번째 성과물이다. 앞으로 다양한 성과물과 공동작업의 열매들이 줄지어 나올 것이다. 다양한 분과들에서 연계의 가능성을 살펴볼 때이다.

 

박진빈 / 경희대·사학과

이 책의 저자로 참여한 필자는 美 펜실베니아대에서 ‘보수적 개혁의 유산:필라델피아의 첫 번째 퍼블릭 하우징 1890~1945’로 미국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백색국가건설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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