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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政黨연구의 보람
[學而思]政黨연구의 보람
  • 김용호/ 인하대·정치외교학
  • 승인 2008.03.04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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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우연한 기회에 내 전공은 정당 연구가 됐다.
내가 미국 유학중에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한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의 등장’에 관해 발표하자, 내가
매우 좋아했던 잭 나이젤 교수는 “그 주제는 너무 거시적인 분석이어서 학문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적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당이나 국가기구를 하나 선정해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논문 주제를 ‘한국의 권위주의 리더십과 정당정치: 민주공화당의 흥망’으로 바꿔 박사학위를 받게 됐다. 당시 나의 주전공인 비교정치 분야에는 관료적 권위주의이론, 종속이론, 국가이론, 정치경제적 접근 등이 매우 유행했다. 이러한 이론들은 주로 60년대와 70년대에 풍미하던 근대화이론이나 정치발전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는데, 나는 한국에서 주로 이들 이론을 공부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가서는 이러한 이론을 비판하는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 등에 매우 매력을 느껴 처음에는 거시적 수준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미시적 수준의 정당, 선거, 의회 등을 비롯한  정치과정으로 전공영역을 바꾸었다.

당시에는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가에서 군부 권위주의세력이 여전히 힘을 과시해 민주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시기였다.
권위주의 리더십이 관제정당을 만들어 선거와 의회를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 정당을 연구하는 작업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젤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국의 민주공화당을 연구해 보니 이러한 선입견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권위주의체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나 전체주의체제와 달리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경쟁의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권위주의세력의 내부에서, 그리고 반대세력과 끊임없이 정치적 ‘밀고 당기기’를 했다.

예를 들면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 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나 결국 집행하지 못하고 미국 망명을 허용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권위주의 리더십이 전적으로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반대세력이 활동할 정치적 공간이 커졌다가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냈다. 나는 이러한 권위주의 정치과정을 민주공화당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당시에는 별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민주화이후 정당과 선거가 정상화되면서 나의 연구는 더욱 활기를 찾게 됐다. 더욱이 80년대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주로 거시이론에 몰두해 미시이론을 연구한 학자들이 적어서 나의 연구가 더욱 관심을 끌게 됐다. 

박사학위 취득이후 지난 20년간 나의 연구생활에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면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의
정당정치, 정당개혁, 선거개혁 등에 관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 독일 나우만 재단이 개최한, 동아시아10개국의 정당정치를 비교분석하는 두차례의 워크숍에 참여해 동아시아 국가와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를 비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 연구의 결과가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됐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독일 사람들의 치밀성에 다시 한번 더 감탄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2차례에 걸쳐 미국 NDI(National Democratic Institute)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한 정치개혁과 선거개혁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필리핀 정치인들은 우리의 정당 국고보조금 지급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나를 초청했는데, 이 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자세히 설명한 후 이 제도 도입에 신중할 것을 권유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야당 정치인들은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해 공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우리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이 이라크 선거관리위원들을 초청해 연수를 실시했는데, 첫 시간에 한국과 이라크의 정치제도를 비교해서 소개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한국의 선거관리와 정치개혁 성공사례를 배우려고 한국의 정치학자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나는 정당연구를 내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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