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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沈默의 봄’을 넘어
[문화비평] ‘沈默의 봄’을 넘어
  • 최재목 / 영남대·철학
  • 승인 2008.02.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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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어이없는 기름유출 사고로 엉망진창이 된 서해안의 태안반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 아름답던 바다며 갯벌은 지역주민들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들 삶 속에 빛나는 국보 1호였으리라. 이제 우리 생애동안 그 온전한 생태 복원은 기대할 수 없다.

‘沈默의 봄’(Silent Spring)을 맞을 수도 있다. 無常感의 포말이 감도는 침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려 하기보다 벌써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妄覺病의 수렁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잊자 잊자!’고 외치지 않고선 하루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山河가 우리 역사의 현장 아닌가. 문득 “피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방랑의 幾山河”라 했던 韓何雲의 ‘보리피리’가 떠오른다.  

참 기막힌 일이다. 바위와 모래를 뒤덮은 기름을 채 제거하지도 못한 視線에 또 하나 火魔가 덮친다. 얼마 전 이른바 ‘국보 1호’인 崇禮門(南大門)이 불타는 뉴스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무슨 저주받은 일이 있어 저런 火刑을 당해야만 하나. 아니 戰時體制도 아닌 멀쩡한 날 웬 화염인가.

숭례문이 왜, 어째서 국보 1호인지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동의하고 있는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청계천을 되살렸다 그렇게 큰소리치던 서울시 아니던가. 그 뒷전에서 멀쩡한 국보 1호 문화재가 속수무책으로 테러를 당한 것이다. 전통 문화재의 홀대와 방치가 이어진다면, 귀한 우리 문화유산들은『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 속에서만 ‘아는 만큼 보였다 잊혀지는’ 幻影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착하고 안쓰러운가. 사고가 난 뒤 사람들은 삼삼오오 태안반도로 달려가 묵묵히 기름범벅을 정성으로 닦아내었다. 이어서 타버린 숭례문 앞은 또 어땠는가. 앞 다퉈 찾아들어 눈물을 흘리며 꽃도 바쳐댔다. 良知가 살아 있는 그들의 눈에 박힌 바다와 숭례문은 바로 우리 스스로의 影幀이었다. ‘얼’이 빠졌으니 우리는 산 자이면서 이미 죽은 자 아닌가.

올 봄, 서해의 푸른 바다도 아름다운 갯벌도 다시 찾아나 올까. 따사로운 ‘南’쪽 門에서는 ‘천지를 분별(別)하고 질서를 잡는(序)’ ‘禮’의 높임(崇)이 장막에 가려질 건가. 푸른 것들은 빛바랬고, 높아진 것들은 낮아져, 하나하나 자연에 쓰레기로 묻혔다. 이런 無常을 체험하면서도 나는 믿기로 한다. ‘어려움을 겪고서 좋은 일을 이룬다(過難成祥)’고. 침묵의 봄 다음에 더 愛憐하고도 强健한 봄이 찾아옴을. 원작자 미상의 노래 ‘千의 바람이 되어(a thousand winds)’에서는 이렇게 읊는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나는 거기에 없습니다./나는 잠들지 않습니다./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중략)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세요./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습니다.” 기름범벅이 된 바다, 잿더미가 된 숭례문도 말한다.
‘내 앞에서 울지 마세요. 이미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라고. 지켜주지 않는 환경, 문화재는 햇살에 눈처럼 녹아 自決하고 歸天하기 마련이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제반 사고의 얼룩에 묻은 罪의 指紋, 황폐화의 遺傳子는 모두 ‘돈’에 대한 욕망, 불만들이다. 현 정권은 대운하 사업에 골몰하고 있지만, 결국 돈의 회전에 성패가 달렸다. 돈 때문에 벌이는 사업이, 돈 때문에 우리 삶을 망쳐선 안 된다. 제2, 제3의 황당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 ‘먹고 산다’는 것이 삶의 진리겠으나 ‘뭘’, ‘어떻게’를 따지지 않는다면 짐승들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새롭게 入閣된 적지 않은 교수들이 修身과 齊家의 울타리를 넘어 治國과 平天下 전선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본래 정치꾼이 아닌 학자로서, 학문과 정치에 양다리를 걸친 장점도 있다. 이 학자-정치인이 ‘지식’을 넘어 ‘현장’으로 혜안을 돌려 생명의 살림살이 公事를 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實用’이 아니다. ‘예측가능한 지속적 행복을 만드는 實心實學의 전략’이다.

기름범벅이 된 바다 ? 불타버린 문화재를 통해 우리는 존재와 그 끝의 큰 意味를 읽는 공부에 동참하며, 불가피하게도 막대한 돈을 치렀다. 이런 긍정의 사고로 다시 開學이다. 無常 속에서 끊임없이 회귀할 우리 주변의 애절하고도 기막힌 ‘탄생’의 봇물. 봄은 우리의 希望을 성찰하는 거울 아닌가.

최재목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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