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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학문의 조건
[대학정론]학문의 조건
  • 서지문 / 논설위원·고려대
  • 승인 2008.02.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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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유수대학의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자기 강의가 있는 날만 학교에 나오는 사람이 많다. 도쿄 시내에 살지 않고 외곽도시에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외곽도시에서 동경시내까지 통근하는데 보통 편도에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서 집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일본은 또 교통비도 매우 비싸서 한 번 출퇴근하는데 전철요금만도 상당액이 소요되고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면 연료비가 그 이상으로 든다. 그래서 시간과 돈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일본 교수들을 집에서 연구를 하게 만든다. 아마도 일본의 교수들은 무척 부부사이가 좋아야 할 것 같이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도 안 되고 부부싸움만 잦게 되지 않겠는가.

신학기가 연구년이어서 도쿄대에 연구를 하러 와 있는데 나의 hosting professor인 와타나베 히로시교수는 휴대폰이 없는 것은 물론 운전면허도 없다. 그런 것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듯 하다. 와타나베교수는 전철 안에서 늘 책을 읽는데 책을 읽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도쿄대 부총장을 지낼 때에는 매일 출근을 해야 했는데 학교에서 기사가 딸린 아주 고급 차를 제공했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부총장으로서의 격무 속에서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도쿄대 교수들은 개인 조교도 없고 연구의 조건이 한국의 대학교수들보다 훨씬 못해 보인다. 도쿄대는 건물이나 시설도 매우 낡았고 심지어 교수 연구실에 있는 전화기도 다이얼식이다. 물론 그런데 대해서 불만이 있는 교수들도 있겠지만 원로교수들은 그것을 매우 당연한 교수생활의 환경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도쿄대 도서관의 사학관련 서가를 보면 저명한 사학자들의 연구서, 논문 전집이 무수히 많다. 黑田俊雄저작집 8권, 石井進저작집 10권, 朝尾道弘저작집 8권, 井上光貞저작집 11권, 中村直勝저작집 12권, 綱野善彦저작집 15권, 石母田正저작집 16권, 大森莊藏저작집 10권, 岩崎武雄저작집 10권, 藤森榮一저작집 15권 등의 저술서는 일본 학자들의 소탈함과 학문의 외길에 정진한 결과로 생각되어 부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무개 교수는 실력자에게 연줄을 대려고 어떤 비상 수단을 동원했다던가 하는 듣기 민망한 소문이 돌고, 어떤 중요 직책의 후보로 언론에 거명조차 되지 않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교수로 보는 동료도 있는 우리의 대학가를 생각할 때 일본의 대학교수들의 소박함이 부럽고, 우리의 학원에도 소리 없이 자신의 길에 정진하는 교수들이 많지만 제대로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서지문 / 논설위원·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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