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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라면이 간다!
[문화비평]라면이 간다!
  • 김영민/철학자
  • 승인 2007.12.31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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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기원이나 내력은 (잠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라면을 둘러싼 풍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풍경이 속이(숨기)는 것은 그 기원이 아니다.
그 풍경의 지극한 통속성은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성에 능히 면죄부를 제공한다. 다만 하나의 단서를 덧붙이자면, 라면이라는 풍경이 활짝 펼치는 그 짧고 얕은 공동체성은 우선 그 기원(역사)을 숨겨도 괜찮은 종류의 것이어야만 한다.
‘사회적 평등자(social equalizer)’로서 라면의 미덕은 고급화-차별화의 전략[力說]이 그 전략[逆說] 속에 되먹혀 오히려 역차별의 자기소외라는 진풍경을 빚는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라면은 그야말로 어떤 ‘풍경’, 가장 늦게 진화하면서 그 기원을 흘리고(숨기지 못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어떤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풍경 속의 관계, 혹은 그 관계로 엮어진 풍경은 라면과 더불어 겪어낸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돌이킬 수 없이 각인된 것인데, 우리는 그 붉은 국물과 붉은 김치, 노란 면발과 노르탱탱한 계란, 찌그러진 냄비와 천상의 냄새를 아무래도 연역할 수 없는 공동의 낮은 경험 속에서 쉼 없이 회집한다. 내 동무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면발의 템포를 곁눈으로 엿보면서 느끼는 그 쓸쓸한 연대, 그 이름붙일 수 없는
연대는 라면의 기원과 풍경을 삽시간에 통일한다.

라면의 풍경이 반드시 낮은 것도 아니고, 혹은 꼭 낮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낮아져 버렸다. 그래서 비록 우리밀 라면이나 일본식 생라면이라고 해도 그것은 결코 스파게티가 아니며, 아니, 우동이나 국수조차도 아닌 것이다. 비록 전두환이 그의 일당들과 더불어 라면을 먹더라도 그 라면을 먹는 것은 결코 ‘본인(!)…이’ 어서는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이건희가 그룹의 사장들과 더불어 라면을 먹더라도 그 라면을 먹는 것이 결코 總帥가 돼서는 안 된다. 라면의 풍경은 그 풍경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면발의 자유와 국물의 평등, 그리고 김치의 박애를 거의 필연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라면이라는 음식의 매체적 효과를 살피는 것이다.

이미 여러 학인들이 조형해둔 ‘식탁공동체’ 개념, 그리고 (음식)취향과 계급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 등도 유용한 생각의 틀이다.
우선 이미 음식은 하나의 대상, 혹은 개체화된 항목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관계와 권력이며, 상징과 문화이고, 계급과 체계로 곧장 뻗어나간다. 어떤 종류의 음식(문화)은 기존의 권력관계를 인정, 강화하는 법이고, 또 다른 음식들은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나마 해방적, 평등자적 계기로서
작용한다. 이 논의에서 당연히 술은 특별한 위상을 얻는다.

고래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카니발적 해방자내지 사회적 평등자로서의 기능을 전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다 아는 대로 그 같은 술의 전통적인 위상과 기능은 자본제적 체제의 전일적 확산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이 바뀌고 말았다.
낭만적으로 채색된 술자리 풍경의 인상과 달리 현대 사회의 술자리는 百態千樣의 레저·향락문화를 끼고 이태백이나 정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 기형화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라면에 대한 대중적 애호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술의 중독성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변수다.

라면으로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면발의 자유와 국물의 평등, 그리고 김치의 박애가 몰아올 혁명, 혹은 혁명의 기미란 기껏 밥상머리에 한정되며, 그것도 그 기원을 모른 척하는 관용과 낭만에 기댈 뿐이기 때문이다.

라면은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혁신적인 음식-매체로 기억되고, 또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그러나 그 운명은 핸드폰의 그것처럼 보수혁명의 가늠자 구실에 그칠 것이다. 라면의 운명이 기껏
밥상머리의 평등자에 불과한 풍경이라는 사실은, 혁명에의 진지함, 자본[富]에의 진지함, 사랑(가족)에의 진지함, 그리고 영생(종교)에의 진지함이 몰각한 자리가 증상적으로 응결하는 모습에 대한 극명한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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