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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원칙과 실용의 조화
[대학정론]원칙과 실용의 조화
  •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 승인 2007.12.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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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이명박 당선자는 숱한 부정부패 의혹과 대선후보에 대한 특검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역경을 딛고 10년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환호하고 다른 후보는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하게 천착해야 할 물음을 던졌다. 그것은 ‘원칙과 실용의 조화’라는 문제다. 우리 국민 중 누구도 이 당선자를 원칙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 당선자가 법의 지배를 들먹여도 엄정한 법집행자의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선자를 실용주의자로 규정하는 데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검정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정부를 ‘실용정부’라고 부르는 언론까지 생겼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원칙에 대한 실용의 압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후보의 당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원칙이 밥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은 거추장스럽고 무겁기만 한 겨울 코트에 불과했다. 어서 빨리 이 외투를 벗어 던지고, 다시 한 번 ‘대충대충’과 ‘빨리빨리’를 결합해 무엇인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물론 과거에 그렇게 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두부를 만들 때 카아바이트를 섞기도 했고, 아파트를 건축할 때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소방규제는 지키면 손해인 규제였고, 어린이 장난감은 한 번 쓰면 고장 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성장은 제법 했다. 그러나 그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카아바이트를 넣은 두부를 먹은 사람은 눈이 멀었고, 이 당선자보다 더 추진력이 강했던 ‘원조 불도저’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씨는 와우아파트가 붕괴하면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겨울마다 터졌던 나이트클럽 화재는 수많은 젊은 목숨을 앗아 갔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자각은 이런 사고를 겪으면서 고통스럽게 터득한 교훈이었다. 그것은 화성 씨랜드 화재를 통해 어린이들을 죽여도 보고, 성수대교 붕괴를 통해 꽃다운 여고생을 죽여도 보고, 쓰레기로 만든 학교급식을 통해 아이들이 집단 피부염을 앓았던 과정 속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훈이 자칫하면 증발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물론 원칙과 도그마는 구별돼야 한다. 실용은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그마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해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는 과연 도그마만을 골라서 버리고 있는 것일까.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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