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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우리시대의 요술 단어들
[문화비평]우리시대의 요술 단어들
  • 조환규/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7.12.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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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임무는 인간 이성을 언어의 마법으로부터 해방을 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요즘과 같은  수상한 시절에는 더욱 맞는 말이다.
무심코 들어간 ‘노래방’에서 어처구니없는 술값을 요구하기에 다시 살펴보니 그 곳은 일반 노래방이
아니라 ‘노래밤’이라는 이름의 룸살롱이었다는 이야기는 마법의 작은 예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올린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은 태풍이나 지진이 아니라 소통되지 못한 말 때문이었다고 하니 말이 헷갈리는 사회가 맞이할 최후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요상한 언어들이 난무해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어 바벨탑 사태가 또 생기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유선TV를 보노라면  길거리 싸움과 별 다름없는 운동이 있는데, 방송 해설자들이 그 선수들을 일컬어 ‘격투가’라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어떻게 시합 중 누워있는 상대의 얼굴을 발로 뭉개며 밟을 수도 있고, 무릎으로 머리를 깔 수도 있는 게임이 스포츠가 될 것이며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어떻게 ‘격투가’라는 고상한 호칭으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힘세고 용맹한 자식에게 “너는 앞으로 꼭 훌륭한 격투가가 되길 바란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이 검투노예들이 설치는 로마 시대인지 헛갈린다. 언어가 마술을 부리는 또 다른 예로는 모두가 잘 아시는 ‘떡값’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떡을 금으로 칠갑을 해서 먹지는 분명 않을 진데 어떻게 그 단위가
몇 백만 원씩 되는가 말이다. 떡을 사먹으라고 주는 돈인지, 받는 상대방이 떡이 되라고 주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같이 떡이 되자고 주는 것인지, 그 어법이 불분명한 이 떡값이라는 말은 수정돼야 한다.

이른바 ‘떡값’이라는 의미의 올바른 표상은 ‘만성 뇌물’이 돼야 한다.
잘 아시다시피 뇌물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현안을 시급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갖다 바치는 ‘급성 뇌물’과 정기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꾸준히 밀어 넣는, 소위 ‘떡값’이라고 표현되는 ‘만성 뇌물’로 나뉜다. 뇌물을 뇌물이라고 말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 앞으로 도둑을 ‘점유물 공간 이동사’로 불러도 무방한가. ‘고문’과 ‘성폭행’을 각각 ‘특수 수사기법’ ‘과도성욕 표출행위’등으로 지칭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허황된 표현을 퍼뜨리고 권하는 행위는 사회질서,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이성까지도 파괴시키는 극악무도한 범죄이므로, 필시 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한다면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낡은 정치가들이 흔히 쓰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도 필자의 귀에는 거슬리기 이를 데 없다.
걸핏하면 “이제는 이전의 산업화 세력과 젊은 민주화 세력이 손을 맞잡고 새 시대를 열자”는 둥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을 한다.

이전 박정희 독재시절에 고생 고생하면서 청춘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우리의 ‘공돌이’ ‘공순이’들을 꼬드기기 위해 지어낸 참으로 절묘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세력에는 그에 대응하는 안티테제로서 반민주화 세력이 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박정희 시대에는 ‘산업화 세력’에 맞선 ‘반산업화 세력’이 있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 무슨 러다이트운동이 있었는지, 아니면 돌도끼와 개썰매로 생활을 하자고 주장한 정파가 있는지는 찾아볼 일이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그 표현 범주가 전혀 다른, 같이 묶어 표현할 수 없는 단어인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요술 단어는 ‘전관예우’가 아닐까 한다.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이 단어에 숨어있는 마법은 신묘하기 짝이 없다. 전직 상사와의 술자리에서 안주 한 점 더 얹어주는 정도의 친절이 ‘전관예우’라면 이해가 된다.
소송의 당사자들이 사활적 이해를 다투는 과정에서 이유 없이 한쪽을 슬며시 편들어주는 행위가 어떻게 예우라는 표현으로 미화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것은 부정한 사욕에 눈멀어 진실의 저울을 비트는
범죄 행위로서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부정판결’로 표현돼야 한다.

조환규/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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