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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뉴욕 유엔본부 방문기
[딸깍발이]뉴욕 유엔본부 방문기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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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약 4백여명의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국 대학생모의유엔회의를 진행했다. 3박 4일 동안 실제 유엔회의와 똑같은 방식으로 각 대학 참가자들이 세계 각 국 대표 역할을 맡아 위원회를 구성해 의제를 토론하고 결의하는, 말 그대로 모의 유엔(Model UN)회의이다. 행사를 주관한 지도교수 자격으로 얼마 전 이 회의의 수상자들과 함께 뉴욕 유엔본부에 다녀왔다.

뉴욕에 있는 한국 유엔대표부로부터 유엔의 활동과 현황, 한국의 위상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또 이들의 안내로 현재 진행 중인 위원회별 회의 가운데 공개로 열리는 회의도 참관했다. 인권 위원회 토론과정에서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회원국 모두가 인정하지만 선진국들은 인권을 주로 정치시민권으로, 개도국들은 소위 개발권(right to development) 논리를 앞세워 경제적 권리로 이해하는 팽팽한 기싸움이 느껴졌다.

 
한편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유엔평화유지군(PKO)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국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은 수단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고, 수단군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민간인 살해에 직접 간여하거나 방치하고 있는 수단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부로 육군 공병부대를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 파견할 것을 결정했고 우리가 뉴욕에 머무는 기간 중에 파병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공을 겨냥한 면피용인지 아니면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고 책임을 나누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인지 중국 대표의 발언만으로 가늠하기가 애매했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예의와 격식을 갖춘 점잖은 유엔회의식 표현 속에 묻어나는 각 국의 첨예한 외교 경쟁의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함께 간 학생들도 자신들이 흉내냈던 회의를 직접 보는 것에 다소 상기돼 열심히 듣고 적고 또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그러나 회의를 참관하고 유엔을 견학하는 동안 유엔이 산적한 국제문제 해결을 위해 말싸움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이미 수년 동안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됐다는데…. 

안보리 회의 다음날 지역신문인 <더 뉴욕 썬>에서 수단 유엔평화유지군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보다는 결국 ‘굴욕(humiliation)’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혹평과, 유엔이 수단에서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인프라 구축을 위해 사태의 시급성을 이유로 아무런 경쟁 없이 록히드마틴사에게 거액의 사업권을 부여했음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고 이것이 나만의 느낌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유엔 무용론이나 개혁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함께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개혁하거나 활용해야 할 장이지 없애야 하는 대상은 아닌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최근 들어 갑자기 당황스러울 만큼 많은 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외교관으로 협상전문가로, 국제기구직원으로 활약하기를 꿈꾸고 있는 현실에 마주치고 있다.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하에서 추진된 세계화정책이 꽃피고 있는 것일까. 소위 ‘반기문 효과’도 매우 큰 것 같다. 영어와 제2외국어 능력은 물론 우리의 국익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국제문제들에까지도 관심과 열정을 보이는 세계인이 되기 위한 진입장벽은 꽤 높은 편이다. 피나는 노력 후에 들어간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하루하루도 기대하는 바와 같이 인류애를 실천하는 쪽보다는 관료제, 부패, 인종차별 등에 마주치며 싸우는 고된 노동일 확률이 더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거품을 걷어내고도 세계를 가슴 속에 품고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인 것 같다. 이러한 열기들이 현실 속에서 적절히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잘 지도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배영자/ 편집기획위원· 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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