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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교수의 쓰임새
[대학정론]교수의 쓰임새
  • 서지문 / 논설위원·고려대
  • 승인 2007.12.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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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동년배의 동료들을 만나면, 교수가 처음 됐을 때는 강의시간을 채우기가 힘들었지만 나이 드니까 강의를 제시간에 마치기 힘들다는 말들을 한다. 텍스트에 덧붙여 부연설명할 말도 많고, 적절한 예도 여러 가지가 생각나기 때문에 어느 새 시간이 가서 벨이 울리면 아쉽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의 자녀들보다도 어리게 되니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어떤 작품을 논할 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역사, 문화적 배경도 무진장 많고 그 작품을 배태한 문예사조와 그 시대의 사상사적 맥락 등 할 말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작중 인물의 심리나 동기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훨씬 면밀히 분석해서 자상한 설명을 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비상한 문학적 감수성과 통찰력을 지녔다고 자부했는데, 이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이제야 정말 작품의 진미를 터득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학생들도 더 사랑스럽다.

이런 귀한 소득이 있기 때문에 나이 먹는 것이 서럽지 않을 수 있는 것이리라. 두뇌의 모자람은 노력으로 상당부분 보충할 수 있지만 연륜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함으로써 쌓인 연륜과 지혜를 너무 소홀히 한다. 사회가 소홀히 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중히 여기지 않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터득한 ‘연륜’이라는 자산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다른 분야로 건너뛰기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느 분야에건 연륜 깊은 중견, 원로들이 많아야 그 분야가 튼튼하게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지혜’가 중요한 학문의 세계에서 연륜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생들은 정열과 의욕이 충만한 젊은 교수의 열정적 강의와 함께 연륜 있는 교수의 깊이 있는 강의도 들어야 인생을 지식과 경험의 보고로 옳게 인식할 수 있다.

흔히 지성인이 상아탑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현실에 참여해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독재와 투쟁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요즈음은 대학교수의 정치참여 과잉이 매우 볼썽사나운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정치에 참여해서 그들의 식견과 소신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교수도 많지만 지성인은 몸소 정치판 등에는 뛰어들기보다 멀리서 현실을 폭 넓게 조망하면서 냉철한 판단으로 현실문제에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가장 요긴한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또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역시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지식인의 역할이다. 얼마남지 않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교수의 위치를 생각해본다.

서지문 / 논설위원·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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