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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노인연구를 생각하다
[學而思]노인연구를 생각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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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 노인전문병원에 계시는 어느 어른을 뵙고 왔다. 와상상태라 맞벌이 자녀부부가 돌볼 수가 없어 모셨는데, 2주일 사이에 급속도로 나빠지셨다고 걱정을 했다. 말이 노인전문병원이지 요양원 수준이라고 봐야 하고, 한 방에 열 분이 계시는 그 방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간이역 같기만 했다. 그러나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의 부양을 받을 수 없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조건이다.  
우리가 노인이라고 부르는 60세 혹은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동일한 특성을 지닌 단일집단은 아니다. 70세까지야 중년이나 진배없을 것 같지만 고령노인이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래서 노인연구의 접근도 초기노인, 후기노인으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75세 이상의 후기노인, 즉 고령노인의 특성은 혼자 생활하기가 어렵고 누군가의 시중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명의 증가로 이 인구층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노인들은 가족 혹은 친척들과 함께, 혹은 가까이 살고 싶어 한다. ‘그들의 시중을 바란다’라는 의미이다. 낯선 사람들이 있는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노인은 그리 많지 않다. 요양시설이 우수하다는 외국의 경우에도 너싱홈 등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비율은 10~15%를 넘지 못한다.
그 방문을 계기로 우리 부부의 남은 생활을 한번 예측해 보았다. 지금 50대의 나는 남편과 둘이 아파트에서 지낸다. 70세 전후로는 짐도 정리돼야 할 것이다. 아마 자발적으로 의식주생활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아파트에서 살 것 같다. 그리고 무배우자상태가 되면 자녀 가까이 가 있든지 아니면 계속 다소 외로이 작은 아파트에 살 것 같다.
이웃과 친지, 그리고 자원봉사 등 익숙한 지역 환경들로 외로움은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으리라 보지만 병이 나면 큰일이다. 그러나 병은 피할 수 없는 단계이다. 죽음에 이르기 전엔 거쳐야 할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죽음도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지 않겠는가.
점점 누구의 시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 즉 와상노인의 상태가 되면 개인적으로 도우미를 들이든지 아니면 노인전문시설에 가야할 것 같다. 그러면 내가 며칠 전 본 그 모습 그대로, 수용소 같은 그 시설의 어느 한쪽 침대위에 짐짝처럼 놓여져 있으리라 본다. 시력이 좋다면 여전히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책을 읽겠지만 그것도 어느 시기까지이리라. 
75세가 넘은 고령노인들이 살 곳을 선택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는 것 같다.
첫째 자기가 살아온 지역, 동네, 집을 잘 떠나지 않는다. 노인이 어디에서 늙어갈 것인가는 노후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은 노인의 삶의 적이다. 친밀감, 친숙함이 긍정적 정서이다. 둘째, 소형주택으로 옮긴다. 이건 관리의 문제와 무배우자 상태의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 은퇴자의 마을처럼 같은 직업, 같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끼리 마을을 구성하기도 한다. 살던 동네에서의 이동도 좋으리라. 셋째, 그 다음이 주간보호센터, 탁노소 등이다. 매일 통학이 가능한 시설 등이다. 이동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립적이다. 그래서 서비스가 좋은 복지관 근처로 이사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시중을 받을 수 있는 요양원들이다. 앞으로 요양원도 다양화해질 것이라 믿지만 그때에는 자녀들

이 방문하기 불편하지 않은 조건이 제일 우선이어야 하므로 노인 스스로의 결정권은 약화된다.
무슨 고집을 부릴 것인가.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녀를 가졌더라도 멀리 멀리 산다면 다 감수해야 하는 상태 등이다. 이런 고령노인들이 향후 인구의 10%를 차지할 것 같으니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이 아니 걱정인가. 80세에 당신은 어디에 계실 것 같으십니까?

이기숙 / 신라대·가족노인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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