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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진실투쟁과 의미투쟁
[문화비평]진실투쟁과 의미투쟁
  • 교수신문
  • 승인 2007.08.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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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와 환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인류를 괴롭혀온 허위는 그 복잡성의 수준과 극복방법의 차이에 근거해 적어도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불거진 학력위조처럼 단순한 허위는 관련서류들을 꼼꼼히 챙겨보기만 해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살벌하게 오간 진실공방에서도 객관적 자료들을 면밀히 대조하면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말로 재미 좀 보려 한 것인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진리는 오로지 나의 것이라고 부르짖으면서 양쪽이 한 발도 양보하지 않고 팽팽히 맞서는 듯해 보이더라도, 이런 부류의 거짓말은 그 본성상 그리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때의 진위판정은 비교적 선명하며, 진상이 드러나면 거짓말을 만들어낸 쪽은 범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응분의 처벌과 사죄의 수순을 밟곤 한다.

물론 단순한 거짓말이라도 그 허위를 밝혀내는 일까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말임을 감추지 않는 한 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거짓말이 이미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차원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을 경우, 그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 생산자는 거짓말의 진실을, 즉 그것이 거짓임을 필사적으로 감추고자 한다. 과거의 독재자들은 가차 없이 국가 차원의 폭력을 동원하여 진실을 은폐했다. 할 말 한다는 언론들조차 신군부의 폭력 앞에서 광주학살의 진상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고 학살주범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그대로 퍼뜨리지 않았던가. 인혁당의 진실은 오늘에야 겨우 빛을 보게 되었다. 막대한 권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도곡동 땅 주인이나 BBK의 실상을 밝혀내려면 아마 생사를 건 진실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진위판정부터가 훨씬 더 까다로운 문제들도 있다. 노무현 정권이 경제를 말아먹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는지 아니면 IMF 위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복지와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진척시켰는지는 결코 선명하고 간단하게 판정되지 않는다. 상반된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점에서 형식상으로 보면 한쪽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설혹 하느님이 이런저런 근거로 판정을 내리더라도 어느 한 쪽은 끝까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한국경제의 미래가 될지 환경대재앙이 될지도 명쾌하게 판가름 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태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해당 사태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투쟁과 진실투쟁이 얽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미투쟁에서는 대개 개인의 의도적 거짓말 이상으로 집단 차원에서 끈질기게 진실로 통용되는 허위가 문제다.(이 경우 전통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애용된다.) 양극화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성장이데올로기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고 흔한 현상이다. 실질적으로 나라 전체만 아니라 지역까지도 말아먹는 지역패권주의는 선거철마다 지역발전을 약속하며 범사회적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너나없이 똑똑한 어른들을 집단적으로 환각에 빠뜨리는 일은 언론공작만으로 어렵다. 적절한 미끼가 필수품이다. 실제의 작은 이익 혹은 이익의 제스처 없이 이데올로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터미널의 허름한 호남선 막사와 우뚝 선 경부선 건물은 오랜 세월 지역차별을 실감케 했다. 눈에 밟히고 손에 잡히는 작은 이익들은 성장지상주의와 양극화와 서민들의 경제난, 그리고 지역패권주의 사이의 함수관계를 은폐하고 보수적 환각을 부추기기 위한 미끼가 된다.

작은 집단 이익들과 밀착된 이런 부류의 허위는 진위판정만으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 극복을 위해서는 집단 환각 너머에서 비로소 단순한 미끼가 아니라 실질적 권익을 떳떳하게 찾을 수 있음을 대중들이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중들이 진실투쟁을 발판으로 의미투쟁에 적극 가담할 수 있어야 한다. 올 대선이 끝없는 의혹들과의 진실투쟁에 머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권익을 넓힐 치열한 의미투쟁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홍승용 / 대구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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