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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시장 절대주의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
[문화비평]시장 절대주의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
  • 홍승용/대구대·독문학
  • 승인 2007.05.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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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나 그 이전의 갈릴레이 시대에는 좀 달랐을까. 요즘 상당 수준의 고액 연구비 없이 이공계 분야에서 어떤 연구가 가능할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만큼 자본 내지 권력에 대한 의존성은 이공계 연구의 선험적 조건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견 가치중립적인 듯 한 환각을 자아내는 이공계의 연구들도 만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주기 어렵게 되었고, 일단 그것은 어떤 권력에 봉사하는 연구인지 물어주는 것이 업계의 기본예의일 것 같다. 국가기구나 재계의 정책결정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싶어 하는 경제학이나 사회과학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따라서 학문적 자율성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논하자면 환전가능성이 아예 미미해 자본과 국가 권력의 각별한 주목을 받지 못해왔고 덕분에 권력에 덜 의존해도 되는 인문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일 듯하다.

물론 지금까지 인문학이 꽤나 자율적이었다고 우길 생각은 전혀 없다. 과거 무지막지한 국가 폭력 앞에서 자율적 인문학이 명맥을 유지한 것은 소수의 저항과 헌신 덕이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절대다수 인문학 종사자들은 자율성의 이름으로 뾰족하게 저항하기보다 조용히 사는 쪽을 택했다. 또 조용히 나마 미래의 좀 더 풍성하고 푸근한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수명을 단축해가며 책과 현실문제와 학생들과 씨름하는 일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특전들을 챙기고 소비하는 쪽을 더 즐겼다. 시장논리의 대공세 앞에서 허약증을 속수무책으로 다 드러내놓기 이전에 인문학은 이미 스스로 존재기반을 허물어 왔다.

그러면 인문학의 위기와 보호육성을 합창하는 지금 이 순간에는  그 합창 덕분에 어디선가 자율성의 싹이 솟아나고 있는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거나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 장치를 얻어내는 데에 목을 매야 하는 실제 사정이 그러한 합창소리에 파묻히기 때문이다.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시장논리를 넘어선 학문의 존재이유는 없는지 되돌아볼 모처럼의 자성 기회마저 자꾸 까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시장바닥에서 그 존재근거를 입증해야 비로소 존재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장 절대주의 시대에는 인문학 역시 자체의 존재이유를 시장논리에 맞춰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일률적이고도 불편한 상황을 향해 자율적 인문학은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고, 시장 절대주의와 어긋난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또 맹목적으로 작동하는 성장과 경쟁과 생존의 본능을 되돌아보고 그런 것이 정말 절대적이냐고 시비를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처럼 지배질서에 시비를 걸 가능성 자체가 이미 인문학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지배질서가 수상쩍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장 절대주의가 지구를 뒤덮기 이전에도 인종주의와 성차별과 온갖 부류의 패권주의는 인류의 절대다수를 가난과 불행으로 내몰았고,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가공할 폭력은 파국의 규모를 확대해왔다. 지배 권력이 가자는 대로 그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류는 충분히 학습해왔다. 비판적 인문학은 현재진행형인 범인류적 불행의 체험에 뿌리를 둔다.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과 대안 모색은 자율적 인문학의 선험적 조건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자율성은 맹목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고 기능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다. 자본을 비롯한 지배 권력과의 긴장에 찬 비판적 관계없이 인문학의 자율성도 없다.

우리의 학문시장에서 자율적 인문학을 최고 우량주로 키우겠다고 안달할 이유는 없다. 인류사회 자체에 무궁무진하게 내장되어 있는 인문학적 에너지에 주목하고, 지배 권력과 시장질서 너머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인문학적 소통들을 소중히 키워낼 때다. 인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인문학의 자율성을 지키고 그 의미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무엇을 내던질 것인지 자문할 때다. 파릇파릇한 학부학생들에게 자신의 무엇을 인문학적 가치로서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지 살피며 조금씩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홍승용/대구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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