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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우공(愚公)을 꿈꾸며
[學而思]우공(愚公)을 꿈꾸며
  • 유광수[배제대 국어국문학]
  • 승인 2007.05.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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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그예 봄비가 내리고 벚꽃은 또한 허망하게 흩날렸다. 문득, 내 발걸음보다 표표히 앞서가는 계절을 생각한다. 돌아보니, 내가 ‘지금 여기’에 엄존하는 이유는 어느 시인의 헌사처럼 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려는 사람들, 최후로 책임질 것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인문학자요 국문학자라는 젊은 날의 생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러한 비장함이 초조하고 황량했던 시절을 의연하게 버티게 해 주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요즘 학문 울타리 주변에서 들리는 스산한 목소리가 심상하지 않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유령처럼 횡횡하고 때로는 분명한 모양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가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 해온 ‘민속 문화’나 ‘고전문학 특강’과 같은 과목들도 이제는 더 이상 종래의 목소리로는 버겁게 되었다. 실용학문에 밀려 나의 손때 묻은 강좌가 간신히 폐강은 모면하더라도 남아 있는 학생들과 함께 한 학기를 버티는 것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는다. 그래도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은 내 눈치를 보며 들어온 학생들이 종강 무렵에는 ‘고전(古典)’의 가치를 고전(苦戰) 끝에 맛보는 것을 그들의 눈빛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기실 내가 학생들에게 남겨주려고 애쓴 것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자세였으니, 나는 학생들이 전공을 살려 이 시대에 전문인으로 우뚝 설 것을 모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 공동체의 순수 일원으로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질 수 있기를 가르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잠재적 원천이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식, 정보화 시대에 들어와 그동안 인간 문화를 지배했던 문자 기록의 권위와 구비 전승의 전통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모양새가 된 요즘의 세태를 인문학 자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어도 내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인문학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 무늬와 결 그대로 지금까지 자신의 고유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인문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인문학자의 무관심과 냉소가 자칫 겸허한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면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언제나 무엇이나 그렇듯이 인문학 또한 엄정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다만 그런 논란과 소란의 와중에 혹시라도 인문학의 존재 의의가 무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기회 될 때마다 이루어 놓은 것보다는 앞으로 이룰 가능성이 더욱 빛나는 학생들에게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실린 우화 중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노인이 보여준 어리석지만 우직한 모습, 그렇다면 결국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난관도 심기일전하여 정진한다면 성취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궁행하려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이 시대 ‘선생’으로서의 소임을 생각해 본다. 
 

문득, 봄 햇살에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니 천진스러운 학생들의 모습이 정겨운 풍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은혜와 감사의 돌계단 어디쯤에 있을 나의 인생은 그래도 이 시대의 우공을 꿈꾸는 학생들이 있기에 행복하며,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기에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유광수/배제대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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