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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수익자부담 원칙’ 폐기할 때
[대학정론]‘수익자부담 원칙’ 폐기할 때
  • 김기석[ 논설위원·서울대]
  • 승인 2007.05.06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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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늘 바뀐다는 세간의 오명과 달리, 지난 60여 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교육정책이 있다.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 원칙이 시행되는 순간 교육의 공공성은 훼손된다. 제대로 된 고등교육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익을 얻는 자가 그 비용을 대라”가 이 원칙이다. 국민 기본권이 이익으로 둔갑됐다. 정부 내 예산부처의 경우가 가장 심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원칙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일제 식민지 노예교육 상태에서 기회를 박탈 또는 억제하기 위해 도입했다. 미군정기 부득이하게 임시방편으로 정하여 재정 부담을 국가와 학부형이 나누어 가졌다. 식민교육 청산 차원에서 일찍 척결해야 할 원칙이었다. 북한은 우리보다 빨리 이 원칙을 폐기했다. 우리는 임시조치가 영구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도 크게 늘었고 또 시설도 현대화됐다. 그러나 변함없는 이 원칙 탓에 사학의존 비중이 80%에 이르렀다. 사학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불균형 현상이다. 이런 형편에, 가칭 고등교육평가원 같은 기관을 세워 문제 있는 학교를 정리하겠다고 한다. 재정조달구조 자체의 근본 변화라는 확고한 정부의 책임은 지지 않고 문제가 생길 경우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익숙한 행정 편의주의이다.
서유럽 국가에서 박사과정까지 무상인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또 미국처럼 유치원을 포함해 고등학교까지 13년이 무상인 것도 이유가 있다. 사민주의 나라인 북유럽 소강국은 형식교육뿐만 아니라 성인교육과 노인교육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아사자가 속출한 최빈국 북한에서도 일찍이 11년 무상교육을 시행했다. 교육이 공익이며 공동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 수익자부담의 원칙이 버티고 있다. 시대착오라 할 이 원칙을 청산할 때가 됐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대한민국이다. 어찌 취학 전과 중등·고등교육, 성인교육 그리고 노인교육까지 유상교육인가. 세계 11번째로 3천억불을 수출한 나라지만 교육재정 조달은 너무 후진 사회수준이다.
반듯한 나라 건설의 지름길은 교육을 반듯하게 정돈하는 것이다. 특히 고등교육을 고등교육답게 반듯하게 제 위치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현 위치조차 잘못 되어 있는 상태에서 미래 창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듯한 고등교육의 출발점은 경제가치 지상주의 탓에 제 궤도를 잃고 국민 교육권 실현을 사적 이익으로 치부하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폐기하는 것이다.

김기석 / 논설위원·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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