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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으로 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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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07.04.2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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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과요?” “네, 제 전공은 사회학인데요, 미국 사회에 대해서 가르치지요.”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미국학과라는 생소함에 다시 한 번 물어보고, 나의 대답 속에서 사회학이라는 익숙함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정치사회학, 경제사회학, 문화사회학 등과 같이 나를 미국 사회를 전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사회인 미국 사회 전체를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종합 사회학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 아닌가.

내가 전공한 사회학의 세부 전공인 일탈과 범죄 분야는 미국 사회학계에서는 연구하는 사람들과 연구비가 몰리는 대표적인 주류 전공분야이다. 그것은 아마 일탈과 범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이 사회학계에도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탈과 범죄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학과에 자리 잡은 교수는 손가락을 겨우 꼽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전공한 사회학자가 적은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여러 관련학과에 자리 잡고 있고 활동도 왕성하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규정한다고 했던가.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미국에서 주류사회학을 공부하던 나는 한국에 와서는 비주류 사회학자로 지위가 바뀌었고, 게다가 이름도 생소한 미국학과에 소속되어 있어 말하자면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오히려 내게 주어진 기회인 이러한 비주류 인생을 즐기기로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비주류 인생, 학문적 주변인에게는 자유가 주어진다. 한편으로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다고, 그래서 학문적 깊이가 얕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정도 감수할 각오는 이미 되어있다.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것은 다름 아닌 흥미롭고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은 닥치는 대로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일탈과 범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이면서, 미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문화사회학자가 되어 보기도 하며, 통계와 방법론을 강조하는 조사방법론 전문가의 역할도 자청해 보고, 미국의 사회문제를 분석해 보는 미국 전문가의 행세를 하기도 하며, 청소년을 연구하는 학자로 활동하기도 하고, 음악과 사회의 관계를 가르치는 음악사회학자를 흉내내보기도 한다.   

나는 가끔 공부하는 인생을 비유하는 작은 연못 하나를 상상해 본다. 겉보기엔 그리 장대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운치가 있어 보이며 독특한 정감이 느껴지는 곳. 그 연못을 발견한 사람들 중 어떤 이는 그 정취를 멀리서 즐기고 돌아가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연못 주위 수풀과 꽃들 속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한나절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몇몇은 옷 입은 채로 풍덩 연못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하루 종일 온몸이 흠뻑 젖도록 뛰어놀고 연못 속의 돌을 뒤집기도 하고 물속의 풀을 뜯어 장난도 치고 연못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그런 후에 기분 좋은 피로감을 가지고 저녁 해가 지는 연못의 아름다운 정취를 아쉬운 듯 뒤로하고 돌아간다. 공부하는 삶이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온몸이 흠뻑 젖도록 연못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닌 사람들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삶의 여정이 이것저것 손 안대는 것 없으면서 제대로 하는 것 또한 없는 종합 사회학자로 끝나는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결국에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제도적 학문 분류의 틀 속에 나를 가두어 놓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학문간 벽을 넘어 한 사람의 학자가 자유로워지기가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

김정규 /계명대·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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