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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폴리페서’ 遺憾
[대학정론]폴리페서’ 遺憾
  • 신동준 편집국장
  • 승인 2007.03.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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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와 ‘Professor’의 합성어인 ‘Polifessor’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정책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교수를 일컫는 영어식 조어이다. 그러나 ‘폴리페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교수 신분으로 정계진출을 모색하며 정치권의 유력 인사에게 선을 대거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치교수’가 바로 ‘폴리페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폴리페서들의 행태는 매우 다양하다. 불쑥 찾아와 대통령이 되는 비책을 후보에게 전달하겠다는 ‘좌충우돌형’을 비롯해 상식 수준의 자료를 싸들고 와 면담을 요청하는 ‘보따리형’, 여러 캠프를 돌아다니며 보고서를 제출하는 ‘나그네형’ 등이 그것이다.

캠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각 캠프마다 이미 정책자문단이 공식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문단에서 일하고 싶다는 교수들이 쇄도하고 있고 공개 또는 비공개로 활약하는 교수가 대략 1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폴리페서의 출몰은 대선 때마다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나 유독 이번 대선만큼은 초기부터 도를 넘었다는 게 정치권 주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일까. 적잖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가 학문적 성과가 미미한 소위 ‘변방’의 교수들을 대거 중용한 것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을 공산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지적이 맞는다면 참여정부의 ‘감짝발탁’식 코드인사가 교수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셈이다.

원래 교수들의 정치참여는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래의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권장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볼 때 萬世의 師表로 일컬어지는 孔子 역시 폴리페서에 해당한다. 그는 학문과 정치참여를 분리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그는 <논어> 子張편에서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라고 역설한 바 있다.

出仕하여 餘力이 있으면 학문을 닦고, 학문을 닦으면서 여력이 있으면 출사한다는 사고는 비단 동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철학이 최고의 학문으로 존립할 수 있다고 갈파한 헤겔도 이상과 현실의 유기적 결합을 역설한 바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비록 황혼이 깃들 때 비로소 날기 시작하나 이 또한 어디까지나 현실의 주어진 시간 내에서의 飛行일 뿐이다. 이는 現實을 理想으로 高揚시키는데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정작 문제는 ‘사이비 폴리페서’에게 있다. 이들은 통상 별다른 학문적 성과도 없이 시류에 영합해 유력한 대선주자에게 선을 대며 得志코자 한다. 이는 괄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현실과 접목시켜 나라를 제대로 만들고자 하는 ‘진정한 폴리페서’의 기본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조선조 당시에도 적잖은 사대부들이 재상집이나 유력 고관의 집을 드나들며 앞날을 위해 선을 대는 소위 ‘奔競’을 일삼았다. 조선조 내내 ‘분경금지령’이 끊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지속될 경우 장차 대학과 학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이비 폴리페서’에게 ‘분경금지령’이 내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신동준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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