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9:15 (금)
[신문로세평]‘9·11참사’와 새로운 세계질서
[신문로세평]‘9·11참사’와 새로운 세계질서
  • 이수훈 / 경남대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9-25 14:42:33
이수훈 / 경남대·사회학

‘9.11참사’는 인류의 비극이자 분명 극악무도한 죄악이다. 그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수 천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그 가족들의 비탄은 어떤 말로도 위안받기 힘들 만큼 참담하다. ‘지상의 생지옥’이 달리 없고, 분노와 증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미국 정부는 국제 테러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 전쟁 준비에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떤 형태이건 상당한 규모의 전쟁은 불가피한 듯하다.

테러범을 찾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당연하다.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순리다. 부시 대통령의 말대로, 이 세상 끝까지 쫓아가 테러범을 추적해서 잡고 처단, 테러의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테러 없는 세계, 테러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세계를 만들 수만 있다면 전쟁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금 세계에는 테러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테러국가와 테러지원국가가 하나 둘이 아니다. 테러조직들도 세계도처에 파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깔려 있다. 인류가 테러로 오염된 세계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9?1사태’는 이런 세계속에서 발생했다.

범죄나 마약과 더불어, 테러는 전지구적 현상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시대 세계질서의 성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이 근본적 성격을 간과하고서는 어떤 분석적 접근이나 해소책도 적절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과거에 일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수없이 치렀다. 대규모 경찰력과 군사력이 동원되고, 비밀작전이 수없이 수행되었다. 하지만 그 ‘전쟁’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전지구적으로 마약과 테러가 횡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질서는 여러 측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혼돈과 무질서, 폭력사태가 심대하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권력관계, 문화적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사실이 어떻건 인류의 대다수는 이런 세계질서의 정점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자신도 현 세계질서의 유일 리더쉽임을 인정한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뉴욕 금융가와 국방성이 테러의 타겟이 되었다고 하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단기적으로, 미국과 세계질서의 상층부는 군사적 해결보다는 정치적 해결을 시도하는 편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응징과 보복은 폭력의 악순환을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다. 군사력을 일으켜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지도에서 없앤다고 해서 국제적 테러주의가 제거되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전세계에 걸친 밀림, 동굴, 사막을 샅샅이 뒤져 테러범을 찾고, 피신처임을 확인하기도 불가능하다.

중기적으로, 중동지역의 평화정착과정을 공정한 입장에서 가동시켜야 한다. 일방주의라는 아랍인들의 인식이 있는 한, 중동지역의 평화정착 과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보다 공정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중동지역 갈등의 당사자들도 화해와 절충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중동사람들은 언제까지 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인류 전체의 발목을 잡을 것인가에 대해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장기적이고 세계체제 전반에 걸친 과제다. 우선 이번 사태를 현 세계질서의 빨간 신호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강한 경고음이 들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인류의 집단심리에 큰 상처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진정으로 인류가 집단적 지혜를 발휘하고 도덕적 선택을 할 때가 바야흐로 도래한 것이다. 이번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이런 방향으로 교훈을 준다면, 그나마 무수한 생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과 성격이 다른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지금보다 민주적인 세계질서인 것이다. 지금보다 불평등이 덜하고, 권력관계가 덜 노골적이며, 다문화주의가 통하는 그런 세계질서 말이다. 이 작업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엄청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지금같이 테러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테러와 그 공포로부터 해방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정치적 노력을 할 것인가. 선택은 비교적 간단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