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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표절된 논술
[대학정론]표절된 논술
  • 강신익 논설위원
  • 승인 2007.03.10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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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와 고려대 총장의 퇴진으로 이어진 표절 시비가 이번에는 서울대가 실시한 모의논술 시험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표절을 포함한 연구 부정행위를 준엄하게 꾸짖는 저작이 다른 책을 베낀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토록 우리는 지적 재산에 둔감하다. 더구나 창의성을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내세운 논술문제 자체가 창의적이지 않고 그래서 비싼 사교육을 통해 비슷한 문제를 접해본 학생에게만 유리하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것이 과연 표절이냐 아니냐의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당국자도 일부 인정하듯이 그 문제의 수준이 사설학원 강사의 비판에도 그렇게 쉽게 상처를 입을 정도라면 서울대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실제가 아닌 모의문제인 만큼 개선의 여지는 있지만, 과연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논술은 프랑스의 바깔로레아와 독일의 아비투어를 모방한 것이라 한다. 그 시험들에서는 논술이 일반 수학능력에 포함되지만 우리는 수능의 보조 역할에 그친다. 통합형 논술이라는 것이 도입된 것도 사실은 수능성적이 점수가 아닌 등급만으로 표시되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서울대는 어떻게든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한다.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더라도 그 속에서 또 우열을 가리려 한다. 논술은 우열을 나누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 교육의 위기는 이렇게 객관성과 변별력에 치우쳐 공부의 재미와 의미를 잃어버리도록 방치한 우리 대학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첨단 분야의 연구에는 천문학적 연구비를 지원하면서도 논술문항과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투자에는 무척이나 인색한 우리 교육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논술이 객관적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논술은 학생이 가진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를 구체적 현실 속에서 묻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수능이 능력을 측정한다면 논술은 그 능력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형식과 내용은 우리 나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실에 뿌리를 둔 것이어야 한다. 어쩌면 아비투어의 아이디어를 표절(?)할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책문(策問)에서 논술의 근거와 의미를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학생은 언제나 교육과 평가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털어버리면 이런 문제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 모의논술시험 표절논란의 원인과 대책을 논하라.”

강신익 / 논설위원·인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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