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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교수 입신의 시대
[딸깍발이] 교수 입신의 시대
  • 김용희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7.02.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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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편집기획위원 ·평택대

과거 선비는 세상에 태어나서 경국제세(經國濟世)에 뜻을 두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선비들은 시(詩)와 부(賦)를 익히고 도덕(道德)과 의리(義理)를 숭상했다. 직신(直臣)은 곧은 말을 숨김없이 하고 도(道)로서 임금을 설득하여 덕(德)의 정치를 돕고자 했다. 그러나 선비도 위태한 세상을 만나면 도를 행하기가 어려워 목숨을 버려 의(義)를 지켜내야 했다. 즉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러한 선비의 물러섬과 나아감에 대한 처신의 문제였던 바.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정치참여가 최근처럼 활발해진 때는 없는 듯하다. 오랜 식민과 독재를 거쳐 비로소 민주화의 시기를 맞게 되자 지식인의 정치적 활동이 왕성해진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러나 최근 언론보도에서 대선 선거운동에 교수의 정치적 줄서기, 과도한 정치발언에 대한 보도가 제기되고 있다. 학문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 자기의 전문지식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지식의 이상적 신념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선거운동원으로서 지지연대서명, 캠프활동이 지나친 면도 없잖아 있다. 공(功)을 계산하고 이(利)를 탐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정치에 입문하여 성공한 예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교수의 이상주의가 현실에 맞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학문적 논리가 현실적 행정실무와 정책결정에서 무리를 낳는 경우가 있다는 점. 이를 현실 행정 실무에서의 경험부족 때문이라 할 수도 있을 터. 일례로 학문으로서 ‘경제학’ 법칙이 한국 현실경제에서 빗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학자가 벼슬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학술이 부족하면서도 공업(功業)을 베푼다면 서투른 솜씨로 손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이이 <율곡집>)

교수의 전문성이 정책자문에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수가 충분히 행정적 정치적 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채 단순히 학문적 신념이나 정치적 재간(才幹)으로 직분을 받게 된다면 문제다. 또한 교수직을 휴직하고 정계에 참여하다 얼마든지 학교로 복귀할 수 있다는 안전망이 선거철 교수들의 마음을 더욱 뒤숭숭하게 한다. 휴직기간 중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재의 자리도 그러하려니와 정계에 있을 때 잘못된 정책결정의 책임에서 재빨리 몸을 뺄 수 있는 책임회피가 우려된다. 

최근 UCC(사용자제작콘텐츠)의 왕성한 활동과 영상이미지 시대를 맞아 대선 선거운동의 초점은 이미지 메이킹에 있는 듯하다. 정치적 소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개성을 특징화하는 것은 당연한 차별화전략이다. 영상매체시대에 대중전파력은 공식적인 ‘정책’보다 ‘이미지’로 전달된다. 하지만 이미지가 실제의 그림자이고 연기술이란 것을 환기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판단력이다. 지식인 교수집단이 대중을 설득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허상’이 아니라 ‘전문적인 정치력과 국정운영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가려내도록 하는 것,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를 대면하게 해주는 설득작업이다. 지도자가 상징적 우상이던 보스시대는 지나갔다. 이제야말로 한국은 민주복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탁월한 전문성, 글로벌한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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