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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무책임한 교수사회
[대학정론] 무책임한 교수사회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06.11.28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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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를 흔히 ‘조직화된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의 사회’라 표현하곤 합니다. 상당히 조직적 방식으로 잭무책임이 분산되어 있어 어떤 일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 것입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대학 사정을 이처럼 잘 개념화한 말도 없습니다.

무책임한 사회의 가장 큰 징후는 정책결정자나 정책 형성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책임을 떠넘기는 형태입니다.

정부는 야당과 언론의 비협조, 심지어 미국의 비협조를 핑계로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 386세대를 모든 실패의 원흉으로 몰아붙입니다. 지식인들은 정부의 무능과 정치인들의 정략적 태도를 탓하며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좀더 반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교수사회 또한 전혀 책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국가정책이나 국정운영에 참여한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 등장 이후 수많은 교수들이 국정에 참여했지만 IMF에서 북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양산했던 수많은 ‘정부의 실패’에 대해 누구 하나 진지하게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선거만 있으면 부나비처럼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우리 지성계가 얼마나 무책임한 지 잘 보여줍니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기능이 자문이든 심의이든 올바른 국가정책의 수립과 운영에 공동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엄중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정상입니다. 관료들이 정교하게 만든 책임분산 시스템에 참여하여 고작 거수기 노릇이나 하고 있다면, 이는 무책임을 넘어 지성을 팔아넘기는 일입니다.

각종 공공기관의 이사회나 회의에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넘쳐납니다. 자리만 챙기고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의 태도가 적지 않습니다. 공익을 다투는 일에 사사로운 마음이 끼어들고, 엄정한 심의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일에 인정이 앞서는 경우 또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성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학자적 무책임함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으로는 관대해야 하겠지만 ‘공적인 사무’에서는 엄정한 학자적 결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지성의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넘쳐나는 조직화된 무책임을 막을 수 있는 방책이라 생각합니다.

이영수 / 발행인 ·  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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