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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 박사의 ‘말잇못’ 학술적 글쓰기
파트타임 박사의 ‘말잇못’ 학술적 글쓰기
  • 최진희
  • 승인 2024.03.25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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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사의 월화수목금금금
최진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최진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 교수

박사과정 고학년차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졸업을 위해 논문을 써야 하는데 생각보다 논문작성이 쉽지 않다며 깊은 한숨으로 하소연했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았으나 혼자 고민하던 시간의 무게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무겁게 담겨있었다. 나 스스로도 논문쓰기의 어려움을 매번 경험하며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파트타임의 ‘말잇못’,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당혹스러움, 긴 침묵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파트타임 박사과정 학생들은 학술적 글쓰기를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다. 회사생활을 할 경우 대부분의 글쓰기는 이메일 혹은 보고서 작성인데 학술적 글쓰기를 훈련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보고서 작성하듯 논문을 쓴다는 학생은 하얀 공간을 채우는 까만 글로 섹션을 불연속적 내용으로 채우기도 한다. 혹은 글은 이론과 주요 개념에 대한 정의없이 자유로운 창작 글이 된다. 나는 그러한 글에 밑줄을 치며 지도학생들에게는 “뼈와 근육 없이 흘러내리는 글”이라고 통칭한다.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해서 학술적 글쓰기가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졸업생 중 기자와 카피라이터, 광고회사 에이전시 졸업생들은 글의 논조를 메타로 읽는 역량은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한 땀 한 땀 작성하는 정신과 육체노동”에 지겹고 몹시도 힘겨워했다. 기자 출신 졸업생은 “기사를 쓸 때는 매번 마감이 있기에 빠르게 쓰지, 논문같이 깊게 공부하고 분석하지 않습니다!” 기사쓰기와 논문쓰기의 차이는 마감의 길이, 깊은 공부와 분석으로 표현했다.

논문쓰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하듯 각종 대학원에는 수료생이 참 많다. 박사를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했다는 자격의 표현이다. 한 금융권의 학생은 “저희 분야는 박사 수료생이 90%가 넘습니다. 다들 박사를 시작했다가 논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들 수료하더라구요.”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수료생도 경력으로 표기한다.

어디 이 학생만의 고민이랴? 논문쓰기는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쉽지 않은 정신적·육체적 노동이다. 방대한 양의 논의의 흐름을 읽고 소화하고 자신의 글로 학문공동체를 설득해야 하는 정신노동이다.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시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작성해야 하는 육체적 노동이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하는 사교적 성격의 소유자라면 동료와 가족과 분리된 고독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힘겹게 논문의 초본을 작성했다고 완성인가? 동료심사(Peer review)의 과정은 어떠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다국적 동료(비판적이며 적대적인?) 심사자들의 ‘다구리’를 맞을 시간이다. 데스크 심사에서 한두 번 혹은 아홉 번까지 리젝당하고 더욱 ‘말잇못’하는 경우도 들었다. 일부 학생은 리뷰를 받은 후 충격을 받고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는다.

평소 직책자의 자리에서 비판받을 일이 없다가 자신의 글이 비판을 받으면 자아가 심하게 흔들린다. 학생들은 투고의 과정을 통해 다각도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최전선에서(하물며 영어로) 방어해야 하는 고도의 협상과 심리술도 사용한다. 

상담요청을 한 학생은 “지금까지 험난한 세월을 잘 극복하며 달려온 이력이 있어서 박사논문 또한 잠을 줄여서 작성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다짐을 했다. 일단 학생이 Writer’s Block을 경험하고 나에게 도와 달라고 연락한 것은 무척 잘하셨다라고 격려했다. “학술적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다는 겸허한 인정에서부터 논문을 시작하면 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이 논문을 쓸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나는 할 수 없어요”라는 고백에서 찾는다.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고 학술적 글쓰기의 기초를 배우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교만이 꺾였을 때, 이제 학생은 질문하고 배울 자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힘든 건 힘들고 어려운 건 어렵다고 말할 수 있어야, 길이 막막하고 답이 없을 때 “도와주세요” 할 수 있다. 질문하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자발적으로 느낄 때, 그때가 학습이 가능한 시기다. 

최진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해외박사과정 프로그램 주임교수로 성인평생교육의 현장에서 디지털혁신으로 변화하는 성인학습자의 삶과 학습 그리고 고등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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