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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지방대 100개 죽이기’
‘서울대 10개 만들기’=‘지방대 100개 죽이기’
  • 박정원
  • 승인 2024.03.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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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경제학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지방대학의 생존과 발전을 통해 지방소멸을 막고, 국민의 삶의 질을 고르게 보장해야 할 여야 정당들이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정책을 앞다퉈 내걸고 있다. 지방대학 몰락의 근본 원인이 대학 서열체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간 서열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 민주당마저 절대다수의 지방 소재 대학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정책을 버젓이 내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전공 입학제도’ 도입 시도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다. 

지금까지 국가의 교육재정 지원은 이른바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과 지방의 거점국립대학에 집중됐다. 이러한 행태가 대학 간 격차를 확대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전국 180여 개 4년제 일반대학 가운데 150개 이상에 달하는 나머지 대학들은 재정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대학 운영자금을 등록금에 의존하게 만들고서도, 장기간 등록금을 동결한 후 재정지원조차 늘리지 않아 이들 대학에 소속돼 있는 학생들의 학습환경과 교수·직원들의 교육·연구 환경 및 노동조건은 급속하게 취약해졌다. 이들 대학 중 많은 수가 폐교했거나 폐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중 없어도 될 대학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 지역에서 소중한 고등교육기관들이다. 

“무전공 입학, 수도권 상위서열 대학에 인재 몰아 주기”

윤석열 정부는 지방대학을 살리겠다던 후보 시절의 약속을 뒤집고 잇따라 지방대학을 죽이는 정책들- 수도권 사립대학 반도체학과 정원외 모집 대량 허가와 무전공 입학제도 추진 등- 을 통해 지방대학의 학생·교수·직원 및 지방에 사는 국민에 대한 배신을 감행했다.

무전공 입학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학생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상위서열 대학에 인재 몰아 주기 행태이며, 대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해 이를 값싸게 하는 일 아니던가! 이를 위해 학생들이 특정 분야로 집중돼도, 이들의 자퇴율이 치솟아도 방관으로 일관한다.

윤석열 정부에게 대학과 학문의 균형발전은 대기업의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인생 행복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언제나 사회적 강자들 편이라서 기업이라면 재벌과 대기업, 지역이라면 강남3구 등 고소득계층 밀집 지역, 국민이라면 소득 최상위권 부자들, 대학이라면 수도권 소수 명문대학 등의 이해관계만 보호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반지역적 정책

그러면 평등과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적어도 대학 정책 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 역시 공개적으로 반지방·반서민적 대학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당이었을 때도 그랬지만, 바로 이번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소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정책은 지역발전을 견인할 지방대학을 도태시키고, 중저소득계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대학을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짙은 보수성향’의 악성 정책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위기에 처해 있는 대부분 지방의 몰락을 가져올 반지역적 정책이며, 중상류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역진적 정책이다. 그 결과는 ‘지방대 100개 죽이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학서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수능시험은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이 서열은 주로 대학의 위치, 역사와 전통, 동료들의 평가, 교육성과 등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학의 위치와 명성이 가장 큰 힘을 가진 요소로 기능한다.

이렇게 해서 서열의 최상위에 ‘서연고’대·과학기술특성화대학 등 8~9개 정도의 대학이 있다. 다음 서열에 ‘수도권 주요대학’이라 불리는 15개 정도의 사립대학이 있고, 그다음에 수도권 기타 사립대학와 지방거점국립대가 있다. 그다음에 지방 대규모 사립대학과 경기지역 신생 사립대학 및 지역의 일반 국립대학이 있고, 그 하위서열에 지방 사립대학이 위치했다. 전문대학은 대부분 최하위 서열을 형성하고 있다. 

지방 거점국립대와 나머지 대학들 격차 확대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과 대학 간 균형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거점국립대학의 지역에서의 위상을 보장하는 것 외에 다른 긍정적 효과는 기대할 것이 없다. 이 정책은 지방의 거점국립대학 9개(강원대·충북대·충남대·경북대·부산대·경상국립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에 대해 현재의 서울대 수준으로 재정을 지원해, 우수 교원과 시설 및 기자재 등 기본 교육 여건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한마디로 이 정책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구체적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2023년 서울대의 학생1인당 교육비는 약 5천803만 원이고, 거점국립대학 중 가장 높은 전남대가 2천412만 원, 가장 낮은 강원대가 1천989만 원이다. 거점국립대학의 학생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에 이르도록 재정지원을 확대하면, 이 대학들에 대한 선호도는 약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수도권 주요 대학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이미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억(포항공대는 1억2천400만 원)에 이르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과 겨루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결국 이 정책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이 정책은 수도권과 지방대학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 채, 지방 내에서 거점국립대학과 나머지 대학들 사이의 격차를 확대해 나머지 지방대학을 빠른 몰락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대 10개 만들기’=‘지방대 100개 죽이기’ 정책이다. 거점국립대학이 위치한 도청 소재 지역에는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지방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 결과 지역 간 불균형은 한층 심화할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중저소득층 차별 정책

이 정책이 초래할 진짜 큰 문제는 학생의 경제적 배경과 그(그녀)가 입학하는 대학의 서열이 거의 일치함으로써 발생한다. 현실에서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최상위계층 자녀가 소위 ‘서고연’과 포항공대·카이스트 등 최상위서열 대학 입학을 독점하고, 그다음 소득계층 자녀들이 수도권 사립대학에 입학한다. 지방에서는 부모의 소득이 가장 높은 그룹의 학생들이 거점국립대학에 입학하고, 중저소득층 자녀들은 주로 지방사립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가계가 더 어려운 저소득계층 출신들은 주로 교육 기간이 짧은 전문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에 근무해 본 사람은 안다. 거점국립대학 재학생이 가장 부유하고, 지방전문대 재학생이 가장 가난하다는 것을. 통계를 보면, 졸업 후 갖게 되는 직장·직업의 성격과 소득 수준 역시 학생의 출신 대학 순위와 일치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 격차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 책임을 오로지 부모가 져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고소득층자녀→상위서열대학 입학→졸업 후 고소득전문직과 권력직 독점→강남 등 우수 학군 지역 집단거주라는 인생경로와, 중저소득층자녀→하위서열대학 입학→졸업 후 저소득직장 및 계약직·비정규직 입직→낙후 학군 지역 집단거주라는 인생경로가 형성됐다.

만일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배타적 지원으로 여타의 지방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몰락할 경우, 도청소재지가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 다수의 고등교육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중저소득층은 이런 막대한 피해를 피해갈 길이 없다. 일부 고등교육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중저소득층을 더욱 차별하는 정책이다. 

중상류층 일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유감스럽게도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서열 체제를 해소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각하는 정책으로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반대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기형적 고등교육 시장의 질곡을 인정하면서, 다만 서열을 미세 조정해 중상류층 일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

사주와 기자 등이 모두 최상위서열 대학 출신인 보수언론들은 하위서열 대학을 마치 문제가 많은 대학인 것처럼 매도하면서 도태가 당연한 것처럼 보도한다. 이들은 상위서열 대학들만 나라의 인재를 교육하는 훌륭한 대학인 것처럼 과장하며, 이들을 집중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교육부 관리들 역시 최상위서열 대학 출신들이어서 보수언론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지방대학 출신으로서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사업가, 학자, 노동조합 임원, 중소기업인, 사회운동가, 정치인들이 많다. 이런 인재들을 배출한 지방대학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의에 찬 험담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장과 선동에 속아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국립대학은 사립대학과 운영 주체만 다를 뿐 차별화된 점이 별로 없다. 더구나 거점국립대학과 일반 국립대학은 더욱 차이가 없다. 만일 국립대학이 기초과학과 인문학 분야 등 사립대학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당연히 특별한 위상을 주장할 수 있고, 특혜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아쉽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면을 발견할 수 없다. 거점국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다른 지방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왜 다른지 설명할 수 있는가? 

고등교육재정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하고
수도권·지방 모든 대학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방대학을 외면하면서 거점국립대학만 챙기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마치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환자를 제쳐두고 부유한 고객의 성형수술을 먼저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퇴행적인 정책이 민주당의 대학 정책이라니 한숨이 나온다. 민주당까지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정당이 되었나? 민주당이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평등과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오히려 한 걸음이라도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학 서열 해소를 추진하고, 고등교육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해 수도권과 지방의 모든 대학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당의 성찰을 촉구한다.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경제학
현재 강원도대학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과 상지대 부총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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