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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항하고 누가 순응하나…‘허위의식’과 ‘자기검열’이 원인
누가 저항하고 누가 순응하나…‘허위의식’과 ‘자기검열’이 원인
  • 정태연
  • 승인 2024.02.1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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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서평_『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존 T. 조스트 지음 | 신기원 옮김 | 에코리브르 | 552쪽

최근 출간된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은 사회심리학 실험으로 검증한 인간의 체제 정당화 욕구를 분석한다. 저자인 존 T. 조스트 뉴욕대 교수(심리학과)는 억압적 체제를 수용하고 옹호하려는 인간의 강력한 경향성에 대한 25년 간 수행한 혁신적 연구의 결정판으로서 이 책을 썼다. 이에 대해 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과)가 심층 서평을 보내왔다. 정 교수는 “체제에 대한 투쟁이나 저항이 가져올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그들은 저항보다는 순응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효능감이 클 때 저항의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변화를 
외친다.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조화와 통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에 가까운 사회다. 정치이념·성별·세대 등 여러 기준에 따라 서로를 편 갈라 비난하고 공격한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의 근본적인 도화선에는 정의와 공정에 관한 논쟁이 들어 있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듯이 정의와 공정의 기준 그리고 그 기준에 견주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가에 대한 판단에 대하여 여러 하위집단 간 첨예한 대립의 결과물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 사회에는 그 사회 체제에서 유리한 집단과 불리한 집단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때 집단 간 갈등과 분열이 있다는 것은 사회 체계의 유지나 변화와 관련해서 유리한 집단과 불리한 집단 간에 충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리한 집단이 지금의 체제를 바꾸고자 하지 않으면, 집단 간 불협화음이 생길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불리한 집단이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특정 사회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와 공정을 회복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 체제에 저항해서 변화를 추구할까, 아니면 지금의 불합리한 체계에 순응하면서 살아갈까? 이 책의 저자 존 T. 조스트 뉴욕대 교수(심리학과)는 여러 경험적 자료에 기초해서 “불리한 집단의 사람들이 체제에 저항하기보다는 그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체제 정당화 이론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정치·경제 제도와 관습을 방어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고자 한다”라고 주장한다.

존 T. 조스트 뉴욕대 교수(심리학과)는 인간이 왜 억압적 체제에 순응하는지 사회심리학 차원에서 분석했다. 그는 체제 정당화 이론에 대해 한 유튜브 방송에서 설명했다. 사진=유튜브 ‘The Brainwaves Video Anthology’ 인터뷰에서 캡처.

 

사람들은 대개 보수주의자다

불리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 체제를 정당화하는데, 그 핵심에는 허위의식, 즉 자기의 이익에 반대되고, 자기에 대한 억압을 유지하게 하는 다음과 같은 거짓된 믿음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불의와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사회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고, 억압하는 사람들의 규범을 수용한다. 그들은 이 세상과 시장은 공정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사회적 약자로 겪는 착취와 학대에 대해 서로를 비난한다. 말하자면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들은 자기 집단이 열등하다는 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외집단을 선호하고 내집단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을 가진다.

허위의식은 사회적 지위나 빈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같은 요인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집단은 자기들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판단한다. 특히, 그들이 수용하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유하지만 불만스러운’ 고정관념은 사회 체제가 유발한 불평등을 보완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 여성 역시 ‘남성은 독립적인 반면 여성은 사교적이고 따뜻하며 관계 지향적’이라는 보완적 고정관념을 받아들이면서, 이 고정관념을 기준으로 자기를 대상화해서 자기검열을 한다. 이와 함께 몇몇 종교는 공정한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세상이 정의롭다고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체제 정당화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특성도 여럿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사회 조직과 작동 방식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사회 문제는 무시하거나 외부의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 성격 소유자들은 권위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 관습주의와 보수주의, 내집단에 대한 우월의식의 특성을 보인다. △사회적 지배 성향은 내집단이 외집단을 지배하고 그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라는 성향으로, 이런 성향의 사람은 현재의 불평등 속에서 지배와 우월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청교도적 노동 윤리는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무분별한 소비와 세속의 쾌락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신념으로, 이 신념이 강한 사람은 평등과 같은 사회적 요구에 비우호적이다. △무력한 사람은 현재의 권위와 위계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존 조스트 뉴욕대 교수(심리학과)는 사회심리학을 통해 인간의 체제 순응 논리를 드러낸다. 사진=유튜브 ‘The Brainwaves Video Anthology’ 인터뷰에서 캡처.

 

억압받는 사람은 왜 체제를 감내하나

조스트 교수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이 사회적 저항보다는 불리한 조건을 감내하면서 체제를 따르는 여러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체제 정당화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동기를 충족한다. 우리는 세상을 볼 수 있는 틀이 있을 때 그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특정 사회의 체제는 세상을 보는 틀로 작용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태도나 행동의 변화를 위해 인지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둘째, 체제 정당화는 불안·공포·위협을 낮추고자 하는 실존적 동기를 충족한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한 글을 쓰거나 관련 사례를 시청해서 죽음을 인식하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믿음, 종교적·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화한다.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은 사회 체제를 방어하고 정당화하는 경향성이 크다. 그래서 죽음을 통한 실존적 위협은 현재 세상을 이해하는 종교적인 틀을 받아들이는 데 기여하고, 이것이 체제 정당화에 기여한다.

셋째, 체제 정당화는 타인과의 친밀감, 사실에 대한 공유된 인식을 통해 연대를 구하려는 동기를 충족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동일할 때 서로 가까이 연대해서 어울릴 수 있다. 말하자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비슷하게 봄으로써 사회 정체성을 공유하고, 여러 일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체제 정당화는 사회적 고립을 막아주고 부조화를 감소시켜주는 관계적 동기를 충족해 준다.

넷째, 체제 정당화는 진통제 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주어진 체제를 수용하고 인정함으로써, 그렇지 않을 때 느낄 수 있는 분노나 좌절과 같은 부정적 정서보다는 삶에 대해 좀 더 만족하는 등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한다. 비슷하게, 종교 또한 우리에게 현실의 가혹함과 불평등에 대한 위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음의 진통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보다 더 행복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억압과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그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2010~2014년 수집한 세계 가치 조사에서 북미·서유럽·호주·뉴질랜드 시민 5명 중 1명 미만이 정치 관련 시위에 참여했고, 3분의 1 이상은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저항하는 비주류 집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충족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체제에 대한 투쟁이나 저항이 가져올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그들은 저항보다는 순응할 가능성이 크다. 저항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효능감이 클 때 저항의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비주류 사람들이 내집단에 대한 동일시가 강할 때, 상대적 박탈감 등에 따른 분노를 경험할 때 그리고 사회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믿고 있을 때, 그들은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기 쉽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변화를 외친다. 그러면서 온갖 아이디어와 시도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그런데 그 결말은 어떠한가? 거의 대부분은 궁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채 원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게 타당한 결론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를 했다.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사회심리학』, 『심리학, 군대 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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