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감동적인 소설 제목이지만 현재 한국 좌파 세력에게는 가장 큰 개념적 무기이다. “그럼 전쟁을 하겠다는 말이냐?”라는 한 마디 말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김정일 체제의 학정을 거론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더라도 전쟁은 나쁘고 평화는 좋다,라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므로 그들은 일견 유리한 이미지를 선점한 듯이 보인다.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의 대표가 개성공단에 가 춤을 추고, 전직 대통령이 한반도 근해상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말하며 연일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도 모두 자신들이 평화세력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방식이 진정 한반도에 평화를 담보해주는가? 핵 위험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집권 세력의 이런 억지 주장이 국민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 답답함과 두려움이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다시 들쳐보게 한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이리이다”라거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문구에서 우리는 서로 죽고 죽이는 실제적인 전쟁을 떠올리지만 그의 전쟁 개념은 결코 실질적인 전투의 의미가 아니다. “실질적인 전투와 싸움만이 전쟁은 아니다. 전투상태로 대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히 확인되는 시간적 공간도 전쟁인 것이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의 전쟁이 의미하는 상징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홉스가 말하는 전쟁상태의 성격은 그러니까 실질적인 전쟁이 아니라 경쟁상태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일종의 외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의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외교라는 데에 그의 독창성이 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 분쟁이 야기된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하지만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전쟁은 힘의 관계에서 차이가 불충분할 때 일어난다. 분쟁이나 전쟁은 불평등의 산물이 아니라 아이러니칼하게도 평등의 소산이다. 만일 사람들 사이에 역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간격이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시적이고 뚜렷한, 엄청나게 커다란 차이들이 있다면 결과는 둘 중의 하나이다. 우선 강자와 약자 사이의 대결이 있겠지만 이 실질적인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승리로 결판이 날 것이다. 이때 승리는 강자의 힘 때문에 결정적인 것이 된다.
두 번째로는 아예 실질적인 대결이 없을 것이다. 약자가 자신의 허약함을 감지하여,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대결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차이가 있는 두 상대방 사이에는 전쟁이 없다. 왜냐하면 힘의 관계는 처음부터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힘의 차이가 크지 않을 때이다. 상대방에 비해 약간만 허약한 사람은 자신이 굴복하지 않을 만큼은 충분히 강하다고 느끼며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는 자기가 이웃만큼 강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상대방보다 현저하게 강하지 않고 약간만 강할 뿐인 강자는 불안감 없이 경계를 늦출 만큼 그렇게 충분히 강하지는 않다. 그는 자기가 타인보다 더 약하게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타자가 계략이나 기습, 연대를 할 경우 자기가 상대방보다 더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약자 편에서는 전쟁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약간만 강한 강자 편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을 피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가지 조건에서만 그것을 피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가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전혀 그것을 포기할 태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쪽이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한도에서만 전쟁을 포기할 것이다.
여기에 치밀하고 냉혹한 表象의 계산이 있다. 나는 타인의 힘을 상상하고, 또 타인이 나의 힘을 상상한다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므로 의지의 과장적이면서도 뚜렷한 표출이 중요하다. 자신이 전쟁을 원하고 있다는 것, 결코 전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를 확고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핵은 힘의 관계를 한 순간에 뒤집는 대표적인 표상이다. 국민에게 기초적인 영양 공급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최빈국이라도 핵만 보유하면 단숨에 군사대국이 된다. 이 엄청난 힘의 역전 앞에서 ‘민족’ 타령만 하고 있는 집권 세력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박정자/상명대·불문학